지난날 한때 월미도에 기차가 드나들었다면 지금 누가 믿을까. 그래서 간혹 재미로 그 여부를 놓고 내기를 거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 한장이 지금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목교인듯 엉성하게 엮어진 다리위로 기관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는 장면이다.

 아마도 지금의 자유공원 북록에서 찍은 사진인듯 하다. 인천역 구내가 전면으로 나타나고 닻을 내린 선박들이 몰려있는 선창을 배경으로 철도가 갈라져 월미도로 들어간다. 1905년의 풍경이라고 하는데 무슨 까닭에 월미도에 기차가 드나들고 그뒤로 어째서 끊어졌는지의 사정을 알릴만한 기록도 전언도 없다. 다만 월미도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본이 기지로 활용하던 군용선이 아니었나 추측될 뿐이다.

 그 위치에 연륙제방이 놓인 것은 1922년이었다. 대한제분공장에서 월미도까지 약1㎞의 구간에 2차선 도로폭 만큼의 석축이 바다를 가로 막았다. 그것은 도로와 방파제의 구실을 함께 했다. 1918년 건설된 도크의 갑문 앞으로 한강하류의 물살이 밀려들어 입출항에 지장이 있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방의 한쪽은 인도 또한쪽은 차도가 되었다.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로는 소풍객이 지나고 아스팔트 차도엔 관광마차와 그때로서는 간혹 볼 수 있는 자동차가 다녔다.

 정확히 말해 다리가 아닌 석축제방의 월미도 다리를 오가며 때마침 만조때와 시간이라도 맞으면 양켠으로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훌륭한 풍광이었다. 그러나 다리 좌우로 매립이 시작된 것은 60년대 초였다. 왼쪽은 곧바로 항내지만 북안으로는 광활한 땅을 얻을수 있었고 오늘과 같은 공장지대가 되어 월미도 다리는 나이많은 노인들만의 추억하는 대상으로 사라져갔다.

 그곳이 말끔하게 정리되리라 한다. 최근 바다가 보이도록 임항주변 블록담을 헐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인데 이왕이면 여기에 꽃길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아예 양켠의 보도를 예전 모양 한쪽으로 몰아 휴식공간 꽃동산을 겸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