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한국외대 중국연구소초빙연구원 
요즘 날씨가 심상치 않다. 지난봄에는 비가 너무 오지 않는다고 해서 한동안 걱정과 한숨으로 괜스레 하늘만 탓했는데, 요 며칠 사이에는 폭우와 폭염이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또 사람들이 죄다 날씨 탓을 하며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날씨만큼 얄궂은 것이 세상일인가 보다. 지난주 충청북도에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났는데도 도의원들이 해외연수를 핑계 삼아 놀러갔다고 해서 한창 떠들썩하더니, 며칠 전에는 각 정당 대표와 대통령 영부인이 우연스레 하루 이틀 사이로 물난리가 난 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풍경이 알려지면서 또 역시 말들이 많다.

영부인은 손가락을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이틀이나 꼬박 물난리 현장에서 여느 동네아주머니처럼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였다고 해서 화제다. 그렇지만 여당 대표는 물난리가 난 현장까지 가서는 자기가 몸을 쓰는 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현장을 직접 둘러보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럴 것이면 바쁜데 뭘 하러 번잡스레 그곳까지 갔는지 의아스럽다. 야당 대표 한 분은 봉사현장에서 장화 신는 것을 다른 사람이 붙잡아 도와준 것 때문에 '황제 장화 논란'과 함께 무늬만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이 아니냐며 또 질타를 당하고 있다.

나랏일 돌보느라 바쁜 각 정당 대표들이 그런 와중에도 짬을 내 물난리 현장에까지 직접 가서 얼굴이라도 잠깐 비치고, 삽질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맹자의 정치사상 중 '군주라면 백성들과 즐거움도 슬픔도 함께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강조했던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물난리로 어수선한 현장에서 립서비스나 하고 장화 신는 것에서까지 갑질을 하네 어쩌네라며 언짢은 소리를 듣는 것은 오랫동안 정치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정치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각 정당의 대표라고 한다면 좀 미숙한 처신이 아니었나 싶다.

중국 전국시대 오기(吳起, B.C.440~B.C.381?)는 많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사기> 오기열전(吳起列傳)에는 오기의 병사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그가 큰 공을 세울 수 있게 된 비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오기는 장수이면서도 병졸들 가운데 가장 천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셨고, 잘 때는 이불을 깔지 않았고, 행군할 때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았다. 게다가 자기가 먹을 식량도 직접 지고 다니면서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었다.

어느 날 등에 종기가 난 병졸이 있었는데, 오기는 병졸의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 치료해 주었다. 그런데 병졸의 어미가 그 소식을 듣고는 통곡을 했다. 그러자 이웃사람이 그 어미에게 아들을 자식처럼 대해주는 훌륭한 장군을 만났는데, 어째 그리 통곡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병졸의 어미는 "예전에 오기 장군께서 남편의 종기를 빨아 주어서 남편이 다음 전투에서 장군의 은혜에 보답한다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우다 마침내 전사했소. 오기 장군이 지금 또 우리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었다고 하니 그 아이도 언제 죽을지 몰라 이렇게 우는 것이라오!"라고 말했다.

오기 장군이 그 병졸을 정말로 자식이나 동생처럼 여겨서 그의 고름을 직접 빨아주었던 것은 아닐까? 여하튼 오늘날 정치인이라면 국민들에 군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시늉이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