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환 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인천부 경정 제1정회 동유기 헌납 사진(부평역사박물관 소장)
1938년 4월, 일제가 전시(戰時) 통제법인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면서 인적 자원의 동원과 물적 자원의 공출(供出)이 법제화되었다. 이 법은 일본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일제는 한반도 내 인적, 물적 자원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는 1940년대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강압되었다.

인천 역시 동원과 공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30년대 후반 인천 전역의 공장에서 군수 물자 생산 설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특히 1940년 부평에 일본인천육군조병창(日本仁川陸軍造兵廠)이 설치되어 군수 물자 생산에 속도를 내게 된다. 이때 많은 조선인들이 조병창과 인근 공장으로 강제 동원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공출한 금속류가 이들의 손에 의하여 군수 물자로 재탄생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가하면 인천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하여 더욱 '충정을 다한 헌납(獻納)'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는 개항 도시이면서도 일본인들의 거점 도시였던 인천의 지역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한편 1940년대 초반 인천 개항장에서 자행된 금속류 헌납에 대한 실상을 살피는 데 단초가 되는 사진이 한 장 있다. 부평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 사진 속 현수막 문구를 보면, 인천부 경정 제1정회 주체로 동기와 유기 등의 금속류 헌납 행사를 진행하며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부 경정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경동에 해당되는데, 유력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인근에 인천신사(仁川神社)가 있어 종교적으로 상징적인 공간인 동시에 1899년 부설된 경인철도 축현역과 가까워 생활에 편리한 공간이기도 하였다.

또한 현수막에는 '미국과 영국을 격멸하자'와 '물리치고 말리라'는 선전 구호가 일본어로 기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호는 전시 이데올로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이 사진에서 주목할 점은 사진 우측 하단에 서 있는 김윤복(金允福, 1870~1952)의 동상이다. 인천부 경정 출신인 그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를 역임한 대표적인 친일 인사다.
그는 일본군과 인연을 맺은 후 인천, 경기도, 서울 등지에서 활동하며 친일 활동을 일삼았다. 특히 그의 고향 인천은 친일 활동의 기반이 된 곳이기도 했다.

동상 흉부에는 '응소(應召)합니다! 송본청님 귀하!'라고 기재되어 있다. '소집에 응한다'는 응소라는 표현은 다양하게 쓰이지만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였을 때 군사적인 표현으로 여겨진다. 송본청은 김윤복이 창씨개명한 이름이다. 그가 1943년 말 학병인천익찬회 회장으로 부임하여 학병 지원을 독려했던 이력을 감안했을 때, 이 행사는 금속류 공출 행사와 더불어 지원병 모집과 관련된 선전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는 인천에서 인천권번, 각종 산업, 자선 사업, 교육 사업, 체육 단체, 종교 시설 등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그가 경정에서 있었던 금속류 공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동상을 자발적으로 헌납하고 행사를 주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군함도'로 인하여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인천에서도 학계와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강제 동원에 대한 연구와 기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오는 8월 12일, 강제 동원의 현장이었던 부평공원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건립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