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하늘과 땅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 계절의 변화가 단지 그렇게 만들어줬을 것이라는 말은 이미 허사가 되었다. 범국민 지지율 84% 역대 최대 수치가 말해주듯 국민이 가슴으로 뿜어낸 날숨에는 탄화된 악성 불안심리 조각들이 게워져 나왔다. 김대중 정권에 발아기를 맞았고 노무현 정권에서 사회 정의의 꽃을 피우는가 싶던 바람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비로소 꽃향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계절풍 때문에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바람은 생명존중과 노고에 대한 위로를 주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의 삶 그 자체에도 가치부여가 된다는 귀속감을 비로소 품게 만드는 바람이었으니 말이다.

거국적 여망의 심지에 불붙인 민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당히 그 바람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한 희망의 실낱을 끊지 않아도 되는 의미심장한 변화였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엄밀하게 말해 동전의 양면처럼 앞뒤가 뒤집혔다고 해서 세상이 확 바뀐다는 얘기는 아니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우리사회 문제의 뿌리가 예상 밖으로 깊고 넓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자본주의 악순환 구조를 선결하지 않는 한, 결코 풀어내기 쉽지 않은 삶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긍부의 갈림길에서 긍정 쪽으로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생의 건강성이 부정 쪽보다 이로운 게 더 많아서이다.

그래서 싸움은 계속되는 것이고 싸우되 선의의 경쟁이어야 하고 합법적인 다툼이어야 하고 결국 누구에게나 이로워져야 된다는 이상적 견해들이 융합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이러한 고민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그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의 사회적 적용에 대해서 이상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에 이르는 과정은 투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법의 목적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조정하고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함으로써 두 가지를 다 보호하는 데 있으며, 두 이익이 충돌할 경우에는 사회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단지 나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을 넘어 삶의 가치와 그 인격의 실현과 우리 사회의 염원인 공동체 실현을 목적에 두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

얼마 전, 인천 중구 송월동 307-1번지 일대의 건물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일찍이 '인천장정'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눈여겨보았고 보존하면 인천의 특색을 한층 돋보이게 해줄 것으로 판단됐던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들이었다. 애경 비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소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오래된 건축물을 통해 인천 사정을 통찰해 역사와 문화 학습의 연계점으로 활용된다면 그지없이 좋을 것이라 여겼던 곳이다.

우리나라 철도 시발지인 인천역과 최초의 외국인 묘지 사이에 놓인 위치는 물론이고 인근의 괭이부리와 일제 강점기 산업시설들과의 연계, 나아가 송월동 일대 일본식 가옥을 통틀어 근대사교육의 현장으로 조성된다면 요코하마, 나가사키, 고베, 오사카, 하코다테의 붉은 벽돌 건물을 활용한 근대 문화시설들을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부재, 멸실 혹은 파괴 등은 그동안 인천 사회가 껴안고 살았던 단어들이었다. 이에 따라 역사의식과 미래를 준비하는 문화의식과 시민의식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완장'사회이고 시민이 위임한 권력은 살림을 위한 칼날이 아니라 무지와 몰상식으로 변한 굴삭기가 되어 역사의 현장들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일들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집안 살림살이를 이렇게 매정하게 내치는데 어찌 감동을 주는 위정자라 할 수 있고 시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인천시장이나 중구청장 하물며 시민 곁에서 눈 마주치며 뒤통수치는 시·구의원들 모두 머리띠 졸라매고 자성하고 역사 앞에 엎드려 통회하지 않는 한, 시민사회의 쓴 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싸리재께에 조흥은행 인천지점과 상업은행 인천지점, 신흥동 조일양조장, 항동 인천세관, 신포동 산업은행, 이제 송월동 대광엔지니어링 또는 애경사… 다음엔 인천의 어느 얼굴이 무식의 대팻날에 갈가리 갈려 주차장으로 만들어질지 애타기 짝이 없다. 주민의 여망이 주차장으로 귀결돼야만 해소된다는 방식에 좀 더 지혜로운 제도적 도전이 필요할 때다. 생활근린공간에 대한 우선적 지원과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지원 혜택도 깊이 있게 고려해야할 것이다.

더군다나 핵심은 무지와 완장이 무기인 지자체 단체장에 대한 자질문제다. 세상의 공기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사회 불통의 원인인 탄화가스의 제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