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구 인천 십정2구역 주민대표위원회 위원장
'희망이란 땅위의 길과 같은 것. 본래 땅위엔 길이 없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魯迅)의 <고향>이라는 단편소설 속 한 구절이다. 참 당연하고 간단한 진리이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져 풀이 벗겨지고, 맨 흙이 드러나고 나무들이 비켜나면 길이 된다.

'희망' 역시 길처럼 같은 곳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생긴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묻는다면 무엇일까. 누군가 나에게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온 가족이 건강하게, 마음 편히 살면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 대부분 소시민들의 바람도 비슷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바도 아니나 이런 소소한 소망도 이루기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32년 전 1986년 9월 부평구 십정동에 개업한 목욕탕을 지난 5월15일에 폐업하고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벗은 몸으로 함께 쉬고 정을 나누던 공간이자, 한평생 일터였던 열우물 목욕탕이 방진막에 둘러싸여 부서져 없어지는 광경을 막상 두 눈으로 보니 마음 한 켠이 텅 빈 듯이 허전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아쉬움과 허전함보다 더 큰 희망은 내가 나고 자란 이 마을이 우리 자식들도 이사와서 살고 싶어지는 살만한 동네가 되는 것이다.

큰 길에 접한 집들은 반듯하게 양옥모양으로 낡고 좁긴 해도 집이라고 할 만하지만 조금만 언덕을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석면가루가 풀풀 날리는 슬레이트 지붕집이 즐비하고, 차는 커녕 걸어올라 가기도 좁고 가파른 골목길은 눈비라도 오면 겁부터 난다. 빈 채로 방치되어 쓰러져 가는 집은 어찌나 다닥다닥 붙었는지 허물 수도 없어 안전펜스로 둘러 겨우 가려놓고 있는 지경이다.

그래도 지난 2015년 연말부터 뉴스테이를 연계해서 정비사업에 탄력이 붙어 천만 다행이다. 불경기에 팔린다는 보장이 없으니 10년이 넘도록 나서는 업자가 없어 사업이 지지부진했는데, 기업에서 임대주택으로 통매입한다니 대형 건설사까지 경쟁이 붙어 이젠 정말 사업이 제대로 되는 것 같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 평생 이 동네 토박이로, 목욕탕 주인으로 살면서 온 동네 주민들과 늘 가까이서 맞대고 지내왔다. 아무리 새 집도 좋지만 사업한다고 이웃이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면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 것인가. 우리 십정동 마을 주민들은 꼭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토지 등 소유자 1721명 중에 이번 사업에 분양신청을 한 주민들이 1437명에 달하면서 83.5%라는 높은 청약률을 기록한 것이다. 많은 수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비거주 소유자라지만 분명 우리 동네에서 살던 좋은 추억을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혜택을 자녀에게 물려줄 요량으로 선택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아무리 다양한 이유라도 분명한 건 우리 십정동이 괜찮은 동네, 살만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으면 울창한 숲속에도 없던 길이 생기듯이, 불가능한 일이라도 여러 사람이 한 마음으로 소망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정2구역 정비사업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전국 최초로 시도하는 뉴스테이 정비사업은 아무도 지나가 본적 없는 산 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 동네 주민들이 서로 믿고, 도우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의지하며 걸어가면 분명히 멋진 길이 만들어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