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두 가지 상황에서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하나는 그저 '어려 보인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며 그것이 칭찬의 '맥락'에서 작용할 때이다. 다른 하나는 내게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 이유를 댈 때이다.
우선 어떤 발화는 그 자체로 칭찬이 될 수 없다. 그 말이 '동안'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마찬가지다. 칭찬은 일정한 맥락이 부여될 때 '칭찬'으로 작동한다. 특정 맥락 안에서 어떤 행위가 칭찬으로 합의될 때 비로소 '칭찬'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말은 처음부터 '칭찬'의 의미를 가진 것처럼 사용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분별한 위계가 가정되는 상황 안에서 맥락 없는 '칭찬'이 남용된다. 어려 보여서 말을 놓는 것의 저변에는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괜찮다는 생각이 있고 '의도'가 칭찬이었으니 괜찮지 않느냐는 '의연함'이 있다. 괜찮지 않다. 의연해야 할 일도 아니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무례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게다가 발화는 '의도'나 '결과'를 넘어 그것의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동안'이어서 말을 놓는 상황에서 나이 많음으로 강요되는 위계 이상으로 무슨 본질적 의미를 찾을 수가 있나.
동안인 것은, 동안이어서 반말을 해도 괜찮다고 태연하게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동안'의 자리에 여성, 손아랫사람, 어린이 등 어떤 말을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동안'은, 여성, 손아랫사람, 어린이는 타인의 자의적인 위계를 허용하지 않았다. #동안 #반말 #위계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인천일보-수도권 지역신문 열독률 1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