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한국방재협회장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재난과 관련한 영화는 찾아다니며 관람하거나 또는 반복해서 본다. 재난에 대비하는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올해 극장가의 흥행 열쇳말은 재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산행', '터널', '판도라'가 흥행을 이어갔다.

재난 사례를 들여다 보자.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다. 2009년 1월15일 승무원 등 155명을 태운 항공기가 이륙한 지 2분여 지났을 때 새떼와 충돌하고 엔진이 멈추는 위기에 처한다. 이 때부터 기장 설리는 노련한 조종술과 동물적 판단에 따라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한다. 허드슨강의 불시착도 오랫동안 실제 체험으로 다져진 감각과 노하우에서 나온 순발력으로 볼 수 있다. 관제소와의 대화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 연방교통안전국은 설리 기장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설리는 "사고 직후 208초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승객들을 잘 보살피고 전원 무사하게 구조할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했다"고 진술한다. 수 차례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 설리의 판단이 옳았다는 결론이 난다. 설리의 일상 생활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기장으로, 위기관리 전문가로 다졌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9·11 테러다. WTC(세계무역센터)가 2001년 9월11일 항공기로 테러를 당한다. 모건 스탠리사는 이 건물 60여 개층을 임차한 투자회사였다. 모건 스탠리에는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급박한 상황임에도 평정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 산화한 '릭 레스콜라'라는 재난안전 책임자가 있었다.

"모두들 자리에 남아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자체 매뉴얼에 따라 모든 임직원들의 대피를 유도해 2700여명이 안전하게 밖으로 나온다. 릭은 인원을 확인한 후 미처 나오지 못한 12명의 직원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다시 찾으러 들어간다. 그 와중에 건물이 붕괴되면서 잔해 속에 묻혀 유해조차 찾지 못한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릭은 1985년부터 모건 스탠리의 재난안전요원으로 근무한다. 1988년 영국에서 발생한 팬암항공기 테러를 보고 WTC도 테러 공격에 취약하니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비용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93년 WTC 지하층에서 실제 테러가 발생한다. 모건 스탠리의 최고경영자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안전사고와 재난에 대비해야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릭은 힘을 받아 잠재적인 위험을 분석하고 다각적인 기업재난 플랜을 마련해 임직원들의 안전교육 및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한다. 모건 스탠리를 찾아오는 방문객도 예외는 아니었다. 테러 다음날 모건 스탠리는 테러의 한복판에 있었으면서도 24시간 이내에 영업을 재개한다. 모건 스탠리의 이러한 일련의 위기대응 시나리오는 평소 재해복구 시스템을 철저히 갖추고 정기적으로 대피훈련을 하는 등 기업재난 경감활동을 꾸준히 펼친 결과라고 본다.

재난안전은 국가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재난 대비와 예방은 당사자인 우리들의 몫으로 바라봐야 한다. 재난 사례에서 보듯 큰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마워! 사랑해!'로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며 생을 마감한 분들의 말을 우리는 가슴 속에 새기며 다시는 이러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