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
헌정사상 최악의 국정농단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들풀처럼 일어나 대통령 박근혜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외환위기, 세계를 놀라게 한 금모으기 이후 이처럼 하나된 국론을 마주한 것이 얼마만인가. 비록 바닥까지 욕보인 대한민국 권력의 민낯에 분노가 치밀면서도 한편에선 광장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 표정에서 희망을 확인한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을 넘어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할 것 없이 젠더화된 습관적 말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자가 나라를 망쳤다', '저잣거리 아녀자' '강남 아줌마', '실패한 여성 리더십', '앞으로 여자가 리더가 되긴 글렀다', 심지어 여성리더십은 합리적, 논리적이지 못하고 관계지향적이며 정서적이라 박근혜-최순실 관계를 낳을 수밖에 없는 '여성리더십의 약점'이라는 한 논설위원의 황당무계한 말까지….

이처럼 본질과는 거리가 먼 여성비하와 혐오에, 지난 31일 알바노조가 "우리는 박근혜-최순실을 여자이기 때문에 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선긋기에 나섰다.
대통령 박근혜가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은 결과이지 '여성'이어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의 18년 독재 아래 권력의 핵심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이후 1997년 신한국당을 통한 정치 입문 전까지 다시 18년간 모든 접촉을 끊고 은둔생활을 한 삶에서, 대통령 박근혜는 여성은 물론 인간의 정체성조차 일반화할 수 없다. 우연히 주어진 생물학적 여성 말고는, 박근혜라는 한 인간에게서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물론, 대한민국을 사는 보통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유례 없는 비정상적 통치 행위를 그 자체로 비판하는 것을 넘어 습관적 여성비하나 여성리더십으로 연결시켜 일반화하려는 의도야말로 여성혐오의 전형이다.

지난 선거구호로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말을 내세운 바 있다. 그의 생애를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혹시나 기대를 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나 집권 4년간 한번도 여성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하에서 여성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혐오만 늘어나게 했다. 그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 발표한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젠더격차보고서 2016(Global Gender Gap Report 2016)'에서 한국은 144개국 중 116위에 머물렀다. WEF는 2006년부터 매년 경제참여·기회, 교육성취도, 건강, 정치권한 등 총 4개 분야의 젠더 격차를 수치화해 국가별로 순위를 매긴다. 지난 2006년 첫 발표 당시 92위에서,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108위(2012년),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116위(2016년)로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사회전반의 양극화 심화는 특히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에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남녀간 임금격차는 3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비정규직 증가 현황을 보면, 여성의 비정규직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는 현 정부가 고용률 70% 로드맵을 시행한 2014년부터 숫자만 늘리기 위해 경력단절 여성에 맞춘 '시간선택제 일자리정책'으로 50대 이상 중장년층 여성중심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고용만 늘어난 결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성역할 강화와 생물학적 성비균형에 머물러 오히려 20세기 수준의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만들더니, 이를 근거로 여성가족부는 성평등정책의 후퇴에 앞장서고 있다. 급기야 살인까지 이어지는 여성혐오가 여성들의 삶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음에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한편 저출산 위기를 한동안 여성의 결혼·출산기피에서 원인을 찾더니 이제는 사문화된 낙태죄를 들춰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자가당착적 발상에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뿐인가. 굴욕적인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온 세계 시민들을 분노케 하였고, 대한민국 역사를 퇴보시켰다. 셀 수 없이 많은 성차별적 사례를 보더라도 대통령 박근혜에게 일말의 '여성성'은 커녕 가부장적 가치를 내면화해 성차별에 앞장선 '명예 남성' 정도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성' 대통령인 적 없는 박근혜의 하야를 외치며 여성들이 민주광장에 모였다. 다시 만드는 세상은 더 이상 여성을 비롯해 모든 약자에 대한 혐오를 멈추고 차별 없는 세상,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가 되길 외치며, 이번 주말에는 더 많은 여성이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