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수 인하대 문과대학장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520여만 가구이며, 이것은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25%를 넘었음을 알려주는 수치다. 이와 때를 맞춰 소위 '혼밥,' '혼술'이라는 것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며 언론매체에서 앞을 다퉈 분석 기사를 냈다.

혼자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기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혼자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며 심지어는 회식 2차 코스로만 알고 있던 노래방 출입까지도 혼자 하는 '나 홀로족'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 홀로족'의 시장 규모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1인 가구의 소비 형태에 맞추어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되면서 '솔로 이코노미'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서구 역사에도 다양한 '나 홀로족'이 있었다. 신을 만나기 위해 오지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고행에 매진했던 종교인들부터 자연 속에서 살며 자연을 찬미한 낭만주의 시인들 모두 홀로 있고자 하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다. 현대인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들 역시 각종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며 사는 가운데 피로를 느꼈고, 그것을 힐링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고독을 세상으로부터의 피난처, 혹은 깊은 명상과 자기 성찰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여겼다. 특히 철학자들이 눈여겨 본 고독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혼자 있음'을 성취하고 이것을 특별한 경험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지거나 신 혹은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등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분리된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을 내면의 대화라고 여긴 플라톤은 고독을 사유의 기본 조건으로 삼았다. 인간을 주로 사회적 존재로 주목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완성은 고독 속에서 명상에 잠길 때라고 했다. 그러나 고대에서 중세까지 가장 적극적으로 고독을 추구한 사람들은 독거(獨居)를 통해 각종 욕망으로부터 정화되어 영적 깨달음과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기독교 수도사들이었다. 황야 교부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전적으로 혼자가 되기 위해 문명사회를 떠나 사막이든 산이든 황야에서 은자의 삶을 살았다. 혼자 있다는 것은 다분히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혹독한 기후와 배고픔, 그리고 사나운 짐승의 공격에 맞서야 했을 뿐 아니라 극심한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기만 하면 그 대가로 낙원의 기쁨을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었기에 독거의 삶을 살고자 하는 수도사는 줄지 않았다.

그런데 독거 수도사들이 감당해야 했던 또 다른 종류의 위험이 있었으니 그것은 악령의 유혹이었다. 예수도 40일간 광야에 있는 동안 악마의 유혹을 물리쳐야 했는데 이 사건은 '홀로 있음'이 영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한 때 황야 교부였던 카시아누스가 수도생활 중에 만났던 독거 수도사들에 대해 남긴 기록을 보면 흥미롭다.

우선 그들은 종종 교만과 허영심에 차 있었다. 이따금씩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들의 남다른 삶에 감탄하며 보내는 찬사는 일반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는 독거 수도사들에게 자만심을 한껏 키워주었고, 이것은 수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싫어 황야로 나온 수도사 중에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쉽게 마음이 상해 대화 도중에 참지 못하고 벌컥 성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수도사가 물질적인 어려움에 집착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수행에 매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당대와 후대의 수도원 개혁자들은 단체 생활 속에서 누리는 고독이야말로 기독교 수도생활의 기본적인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곳곳에 수도원을 짓게 된다.

최소한 먼저 공동생활로 충분히 영적 훈련이 된 수도사만이 더 어려운 단계인 독거 수도사의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결국 '혼자 있기'와 '함께 있기' 사의의 균형이 중요한 쟁점이었다.
혼밥족이나 혼술족에 대해서도 긍정적 평가와 우려가 엇갈린다. 주로 젊은 세대인 이들이 학교나 직장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각종 집단주의를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과 교감을 나누지 못해 인간관계가 단절된 자폐적 존재들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그 전에 디지털시대의 나 홀로족이 어떤 의미에서 '혼자'인지에 대해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혼밥족'이 스마트폰과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의 '나 홀로족'은 복잡한 오프라인 사회로부터는 거리를 둬도 온라인상에서 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고독의 장점을 누리면서도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균형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의 수혜자들인가. 아니면 혼자 있어도 고독이 불가능해져 깊이 있는 자기 성찰도 어렵게 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