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예총 사무처장·시인
문화의 달, 지난 10월은 밀어닥친 문화행사로 눈코뜰새 없이 바뻤다. 멀뚱히 뜬 눈 이부자리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봤자 남는 것 없다는 심산으로 일어나 주섬주섬 옷 걸치고 길을 나선다. 미련한 짓이기는 하겠지만 이 뫼비우스의 굴레를 깨려면 안을 박차고 바깥으로 나가야만 할 것이다.
걷는 순례가 남긴 가장 큰 선물이라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길에서 만남의 교감을 이루며 일상을 꾸는 꿈이다. 언제까지 더 써먹어야할지 모르지만 우려먹기는 꽤 우려먹은 노동자의 도시 인천을 주도면밀히 묘사한 <인간문제>의 언저리 동일방직 담을 끼고 만석동 철로 길을 생각하며 오르는 고가 계단, 옛날 돼지시장이라 했던 송월시장의 횡단보도를 걷는다.

치달아 오르는 숨차는 길, 기상대에 다다르니 내려다 보는 응봉산의 북쪽 시가가 한눈에 든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 삶은 그렇게 도시의 여정 속에서 무아를 얻고 진여(眞如)를 알아 각(覺)이 생기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아쉽다면 동반자가 있어 현실적 알레고리가 엮어 있는 말 들으면서 걷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어느새 옛 비둘기 광장, 흐린 일기의 탓이러니 한 낮인데도 사계가 말없음표를 찍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시선을 움직이지 않아도 앞바다의 풍광은 휑하니 삶의 비의와 정한을 낳고 있다.

개항기 외교관, 사업가들의 저택이 즐비했던 송학동의 길은 꿈을 보여준 길이었다. 꼭 한번 살고 싶은 동네였다. 홍예문 위쪽 양 옆으로 난 계단에 앉아 바다쪽을 보며 길게 들이마신 숨 뿜어내며 말끔히 가신 마음의 상처, 그렇다 상처받은 건 역사의 되돌림표 속에서 있었던 일, 살아 있음의 증표를 보는 것이다. 홍예문을 만들기 위해 죽어간 중국인과 한인의 영혼은 '다아스포라'의 증인이 흐른 역사 속에서 되고도 남음이 있으니 곧 상처는 살아 있음의 확실한 증표다.

근대화를 속도의 문제로 환원시켜 가는 길, 길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되돌아오는 길은 인문(人文)이며 인문(人紋)으로 사람의 무늬를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가 역사다. 옆으로 선 집들은 바뀌어 온 주인의 의식 속에서 관심을 낳고 느끼면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또 다른 역사이다. 다리의 힘이 풀려 내려오는 송학동 존재론적 차원에서 소외되었다 소내(疎內)되는 듯하여 그나마 다행스런 동네지만 역사복원의 노력은 좋으나 고증과 연구없이 한다면 또 짝퉁을 만드는 일 생각지도 말았으면 싶다.

송학동을 벗고 관동길, 그리고 신포동 길, 가을인데도 온 몸을 드러내 놓고 있다. 슬픈 모양 외롭다. 아니 깜깜한 밤인 것 같다. 인천은 경기도를 대표한 도시로 각 관공서가 인천에 남아 명맥을 유지케한 도시로 영과 욕의 부침의 세월을 산 곳이다.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며 폐간된 '서울신문' 복간과 더불어 인천염업 사무실에 소한 최성연 선생이 지사를 운영하던 시절 신문배달소년이었던 나는 한글 깨우치듯 배달에서 남은 신문을 읽었던 때부터 종이신문을 사랑하게 되었나 싶다.

멍하니 서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 1945년 10월7일 창간된 대중일보의 후신 '경기매일신문'이 있었던 건물 입구, 바쁘게 출입문을 열고 드는 사람들이 오버랩되며 인천의 언론을 죽인 그때 그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연안부두 쪽 조선회사에 입사하던 이듬해(1973년) 여름 인천의 시민은 눈을 감고 입을 막게 했던 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43년 전이다. 그리고 경향신문보다 1년 더 빠르게 창간된 '대중일보'가 지금 살아있다면 71살의 나이로 '띠따소리'(따라오라는 명령소리)를 깨뜨리는 대중의 소리인 '괏따 소리'를 내고 있으련만 과거라 하기엔 너무 아픈 과거가 아닐 수 없다.

1년 차이의 경향신문과 대중일보의 창간일은 우연처럼 하루 간이다. 1946년 10월6일 경향신문이 창간되고 그 일년 전 다음날 대중일보가 창간돼 살아있는 '경향'을 보면 나는 대중일보를 기억하는 방법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변함이 없을 터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경기일보의 김성철, 이석인, 전흥수와 잔을 기울이며 폐간의 슬픔을 나눈 신포동의 선술집 '키네마'가 눈에 선하다.

종심(從心, 뜻대로 행해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경지)의 71세를 비유할 이 땅의 언론 적자는 어느 신문일까. 인천에 본사를 두고있는 신문이 적자가 아닐까만 잃어버린 71년에 이 땅에서 발행하고 있는 언론사들의 지나칠 수 없는 과오를 반성하고 바로 잡아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이제 정답을 찾아가자. 대중일보의 후신으로 남았던 경기매일의 터에 '언론박물관'을 세워 바로잡아 가면 어떨까. 아무도 탐욕할 수 없는 역사를 사실대로 박물관에 넣어 시민에게 정답을 보여주는 일. 언론은 정(正)론으로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저널리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어느 진영에 서지 말고 직필하며 먼 훗날 '언론박물관'에 보관될 발행 숫자를 생각해 볼 일이다.

다시 길을 재촉하며 걷는 길, 평화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엔 정의도 있음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