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동산중 교사·문학박사
▲ 아타미 오미야노마츠 공원의 이수일과 심순애 동상.
인천 개항, 133년. 인천 인구, 300만 돌파. 인천항이 개항된 지 133년이 된 2016년 현재, 인천의 인구는 300만 명을 넘어서게 됐다.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던 인천에는 1883년 개항 이후 일자리를 찾아 당시 우리나라의 타지에서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그것이 중요한 요인이 돼 인천의 인구는 이처럼 증가해 온 것이다.

이와 같은 인천은 어떤 곳인가? 개항도시로서 항구도시 이외에 공업도시, 국제도시 등 그 이름 앞에 여러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인천은 '근대문학의 중심지'로서, '근대문화의 통로 구실을 해 온 인천은 한국 근현대를 이끈 상징적 도시'라고까지 지칭되기도 한다.

실제로 근자에 필자는 한 대학 연구원에서 추진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일제강점기 때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천을 시의 공간으로 취하고 있는 인천 시편들을 조사하여 목록화했다. 무려 180명의 시인이 창작한 1026편의 시를 시인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과거 인천을 배경으로 해서 쓰인 시로는, 김소월의 <밤>을 비롯해, 김동환의 <월미도 해녀요(月尾島 海女謠)>, 정지용의 <뻣나무 열매>와 <오월소식(五月消息)>, 박팔양의 <인천항>, 김기림의 <길에서 - 제물포 풍경>, 오장환의 <해항도(海港圖)>, 박인환의 <인천항>, 한하운의 <작약도>, 조병화의 <추억> 등 익히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품도 여러 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천 시민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온 사람들도 인천이 이와 같은 측면에서 문학도시라는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물론 인천 개항장 문화지구에 문을 연 한국근대문학관에 가 보면 그 실체들을 일부 접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알아도 한국근대문학관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물론 인천에서 출생해 성장한 필자도 인천의 지역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전에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군산근대문화유산거리 탁류길과 강릉 경포대 시비공원 등을 거닐면서 문학도시 또는 문향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수년 전 필자가 일본 도쿄 남쪽 해안에 있는 전통적인 온천 관광지 아타미의 오미야노마츠공원에 세워진 이수일과 심순애 동상을 보고, 마음에 새겨진 깊은 인상은 지금도지울 수 없다. 소설의 배경지에서 주인공의 동상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먼저 인천을 시의 공간으로 취하고 있는 인천 시편들의 배경지가 정확하게 어디인지에 대해서 고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인천의 모습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인천 고유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그 배경지에 벽시 또는 시비 등으로 제작해 놓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도 이와 관련된 작품은 여럿 있어, 염상섭의 <이심(二心)>을 비롯해, 주요섭의 <구름을 잡으려고>, 이태준의 <밤길>, 이광수의 <재생>, 강경애의 <인간문제>,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이원규의 <포구의 황혼>,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등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들도 고증을 거쳐,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길 만한 구절을 찾아 표지석 등을 제작해 놓는 것은 어떨까 싶다. 왜냐하면 개발로 인해 옛 흔적조차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 상황 속에서도 그 지역의 소중한 문화 공간은 지켜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선 개항누리길과 관련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작업이 진행됐으면 한다. 근대문학의 중심지로서 인천의 문화유산이 그래도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작업이 그 이외의 인천 지역으로도 확대된다면 문학도시로서 인천의 면모는 자연스럽게 체감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