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수필가
간석동 모 아파트로 이사한 지도 6년이 됐다. 이곳은 단지 내 녹지 환경이 넓고 주차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장애인 주차장을 차지하기 위한 무언의 신경전이 일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이사왔을 때 두 개의 장애인차량 자리 중 한 곳은 장애인 보호자 차량이 말뚝을 박은 듯 주차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운전을 할까 말까 이동을 하지 않아 얼마나 중증 환자이면 저럴까 안쓰럽기까지 했다.
남은 장애인차량 주차장을 늘 이용해 오던 중 얼마 전부터 장애인차량 스티커를 부착한 낯선 승용차가 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일찍 일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 운이 좋은 날은 그 자리에 주차할 수 있지만 저녁시간엔 항상 지하2층 장애인 주차장으로 차를 되돌려 내려가야 했다.

어느 주말, 마침 장애인 주차장 자리가 비어 주차를 하고 있는데 장기주차를 해 오던 장애인보호자 차량이 외출을 했다가 귀가하고 있었다. 직장인 차림의 30대의 젊은 운전자는 장애인차량 빈자리가 안 보이자 옆에 있는 일반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런데 젊은이의 행동이 미심쩍었다.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운전석 앞에 부착했던 장애인보호자차량 스티커를 떼어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은 후 아파트 출입문 안으로 사라졌다.

어느 날 밤늦게 귀가해 주차를 하려는데 장애인보호자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은 젊은이의 차량이 장애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 가짜 장애인 차량이 아닌가 싶어 경비실에 연락을 하고 구청에 고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경비실은 입주자를 고발할 수 없다며 직접 처리하라고 거절했다. 즉시 현장을 촬영하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촬영하러 나왔을 때 장애인 주차자리에 있었던 젊은이의 승용차도 얼마 전부터 자리 경쟁을 하던 낯선 장애인 승용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 두 차량 소유주 가구가 이사라도 갔는지 수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장애인 주차자리는 두 개가 항상 비어 있다.

구월동 CGV 극장을 갈 때마다 장애인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을 확인하곤 한다. 절반은 '주차가능 장애인차량'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은 승용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은 장애인차량 스티커 대신 '입점 차량'이란 인쇄물 쪽지가 붙어 있는 차량들이 장애인 차량 행세를 하고 있었다. CGV 건물에 입주한 상인의 차량이니 문제 삼지 말라는 통보 같았다.

초청을 받은 야외 행사장에 참석했을 때 난감한 경우도 있었다. 행사장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이 장애인 자리인 줄 알고 진입하려 하자 그곳은 VVIP 주차장이라며 안내원이 몸으로 막아선다. 하는 수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로 차머리를 돌리며 항의를 해보지만 안내원은 주최측의 지시라고 일축해 버리며,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표정을 짓는다.

모 신문의 독자는 남아도는 장애인 주차장을 일반 주차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투고를 했다. 대한민국 인구의 5%에 해당하는 250만명이 장애인인 이 시대에 각 주차장마다 장애인 주차장은 몇%나 설치돼 있는지 확인해 보고 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