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곧 추석이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서 얼굴을 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이러한 다정한 이유로 많은 이들이 명절을 반가워한다. 그러나 반가워하는 이들 못지않게 많은 이들에게 불편한 것이 명절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는 성적 및 진로 스트레스가, 며느리를 비롯한 집안의 여성들에게는 각종 집안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벌칙처럼 부과된다.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 이후의 진로, 취업, 결혼 등의 질문이 난무한다. 안부와 걱정을 빙자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의 정도와 깊이가 지나치다는 점에서 때로는 무례하기까지 하다. 많은 청년들이 명절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괜찮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다. 그 의구심에는 잘못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타인의 질타에 의해 강제되며 끝내 그 강제가 부정적 자기검열을 이끌어내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이제 막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20대나 사회생활을 하는 중인 30대의 경우 직장 및 결혼의 문제는 예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취업 및 혼인은 주로 사회에서 제시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삶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각각의 지점들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마치 게임의 퀘스트 같아서 일정한 수준(현실에서는 주로 나이)에 도달하면 개인의 취향이나 신념, 선택과 무관하게 '달성해야만' 하는 것으로 주어진다. 비극적이게도 게임과 달리 현실의 개인은 이 퀘스트를 수락/거절할 선택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는 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할 권리가 없을까. 길은 본디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곳을 꾸준히 밟고 다니다보면 어느덧 '길'이 된다. 100명의 사람이 사는 곳에 100 종류의 삶이 있다. 사회의 궤도란 100명의 사람 중 다수가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일 뿐이다. 각 개인은 각자의 선택과 신념으로 살아갈 자유가 있고 그 자유만큼의 권리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단 하나뿐인 궤도를 걷어내도 괜찮다. 자신의 길을 걸어도 괜찮다, 그런 말이 모두에게는 필요하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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