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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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중략)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득거리다 잠이 든다 (중략) - 백석 시인의 시 <여우난골族>

얼마 뒤면 추석이다. 주말에는 벌초를 다녀오는 사람들로 도로가 붐벼 밤늦게야 소통이 원활해졌다는 뉴스도 접한다. 마트나 재래시장도 추석 대목을 준비하느라 붐빈다. 백석 시인의 <여우난골族>이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식구들 모두, 개까지 큰집으로 가면 일가친척들 모두 모여 있고, 새옷 냄새도 나고, 떡 냄새도 나고 나물이며 고기도 풍성하다. 한 방씩 차지하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밤새 웃고 이야기 하고 놀이를 하고 논다. 명절날의 은성한 분위기가 하도 따뜻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필자도 어렸을 때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명절이면 외가댁 식구들이 집으로 찾아와 윷놀이며 화투를 치고 놀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문방구에 몰려가 색색의 장난감들을 구경하느라 기웃거리고 동네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알던 일가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명절에 우리 집을 찾아와 얼굴이 벌게지도록 술을 마시던 얼굴을, 외할머니 손에 몰래 용돈을 쥐어주던 손을, 내 귀를 잡아 서울 구경시켜준다고 짓궂게 들어 올리던 팔을 떠올리며 숙연해지곤 했다.

그러게 풍성하던 명절이 언젠가부터 명절증후군이 등장하고, 나홀로족이, 여행족이 등장했다. 의식을 치르듯 큰집에 들렀다가 차례를 지내고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채 물어볼 새도 없이, 추억 한 자락 남길 여유도 없이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다. 올해도 한가위 보름달, 환하다는데 서둘러 흩어지는 길조차 밝혀준다는데 잊고 지냈던 어르신들, 친척들께 곡진한 안부 문자라도 보내는 건 어떨까. 오랜 뒤에 덜 쓸쓸해지기 위해 적금붓는 마음으로 말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