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주차장을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스쿠터도 이 도시에서는 비만이다. 도시 전체를 비만으로 진단내린 인천 메트로폴리탄 시티의 모든 인도는 앞으로도 날씬하게 진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심장의 박동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알파고 수준 첨단 자동차 일색의 도시, 맨 살을 녹이는 시멘트의 지독으로 몸집을 부풀렸음에도 녹색미래를 담보한다고 했다. 길이라 해봤댔자 고지혈증에 걸렸거나 혈관을 틀어막는 자동차들의 잠깐 주차로 더욱 좁아져버린 거리가 되었음에도 말이다.

뒷골목은 말 할 것도 없다. 구석구석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쌓였다 사라지는 마술이 반복되고 있다. 최신식 고압 프레스로 무장된 청소차는 정품 쓰레기봉투가 아니면 싣지 않는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불법 쓰레기는 벌건 대낮에 내걸린 춘화처럼 인천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말았다. 이랬음에도 얼마 되지 않아 깨끗이 정리되는, 그 흰색 마술의 주체는 묵묵히 제 일에 매진하는 공공근로자들이었다.

중국어로 플래카드를 남기던지 한자를 쓸 줄 아는 주민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 줄 써 주면 될 일임에도, 뒷골목 거주자 거개가 노구인지라 개선의 기미는 녹녹지 않았다. 원천적으로 정량 쓰레기봉투를 판매하는 각 구청(시설관리공단)들이 앞장서 화동훼리, 단동훼리, 위동항운 등을 타고 인천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에게,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를 사서 버려야 한다는 합동 계도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였다.

도시만이 뒷골목을 갖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도 뒷골목이 존재했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대로에서 악수를 건네는 위정자들이 음습한 손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감춘 공무이기 때문이었다. 인천의 문화판이 '개판'이라는 소리는 뒷골목에서 나온다.

어느 어둔 골목 허공에서 쓸쓸히 부딪히는 술잔에서 흘렸거나, 취중에 남의 집 담벼락에 오줌 누면서 바짓단에 묻히지 않으려고 오두방정 떨 때 나오는 소리라 오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판의 '개'는 아무렇게나 또는 마구잡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해법도 정답도 양심의 저울에도 달리지 않는 허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수 몇몇이 자아위상의 획득 또는 몸을 지키기 위해 허상의 비겁을 껴입는다거나, 양식 있는 시민들이 '이건 아냐!'로 반응을 보인 정명 600년 기념비 등은 문외한의 눈썰미에도 뒷골목에서 이뤄진 비화쯤에 비견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뒷골목은 보이지 않는 힘이 현현하는 깜깜한, 한 길 물속처럼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대만 영화 '봉신방'을 보려고 동방극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비좁았다. 함흥냉면으로 유명했던 화신면옥과 대전집 사이 한줄 골목은 신포동에서 동방극장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누르스름한 외등 하나가 겨우 길임을 알려주었고 신포동에서 기침 꽤나 하는 사람 아니면 드나들기에도 섬뜩한 뒷골목이었다.

거기에서 노상강도를 당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당해본 느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호주머니 돈을 몽땅 빼앗기고 망연자실해 있는 걸 본 동네 형들이 한 시간 만에 세 명을 내 앞에 무릎을 꿇렸다. 묘한 쾌감이 들었다. 어머니도 그냥 넘어갈 일이라 했고 형님들도 속만 끓이고 있었는데, 말썽꾸러기에 건달 같아서 기피했던 동네 형들이 이를 해결해줬던 거였다. 이른바 뒷골목을 휘젓고 다니던 철부지 인천 망둥이들의 이면세계를 처음 알게 된 뒷골목 사건이었다.

뒷골목 세계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가방 끈 긴 자들은 그들대로, 약자들은 약자들대로, 정치꾼들은 정치꾼들대로, 거기에 각종 지연, 혈연, 학연 등의 이름을 걸고 배후 세계를 구축해댔다. 이 모두에게 '들'이란 복수형 조사가 따랐다. 마치 어두운 시장바닥을 우르르 몰려다니는 길고양이 무리처럼 상위포식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 그룹이란 수식이 교차되기도 했다. 살기 위해서 혹은 살아남으려는 '동물의 왕국'의 한 장면이었다. 별 떨기 몇 점 놓인 밤하늘을 향해 시대적 반성문을 쏘아 올려보지만, 이내 가슴에 꽂혀 언어장애를 겪고 마는 굴욕을 체험하게 된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현상일 거란 위안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뒷골목은 골목 밖의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도시의 혈관이고 삶의 고도를 높이려는 저변이라는 점에 강력한 동의를 보낸다. 동물의 왕국을 방불케 하는 이성적 사회의 불편한 진실들이 중음신(中陰身)처럼 떠돌고 있는 형국이다. 어차피 다음의 더 멋진 세계를 꿈꾸는 것이 우리의 본질적 욕망이라면, 적어도 뒷골목 세계를 빠져나오려는 용기와 반성 그리고 겸허한 덕을 한 짐 가득지고 나와야 하지 않을까.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