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어니스트 기자
▲ 김재환 어니스트 기자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쯤 앞두고 있을 때였다. 집과 도서관만을 오가는 취업준비생 신분이었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왜?'라는 물음에 속 시원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준비생이 하는 것처럼 신문을 읽고 글을 썼지만 시험은 어려웠다. 탈락이 거듭될수록 회의감만 커졌다.

애써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무언가가 절실했지만 알지 못했다. 그렇게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취업 커뮤니티를 뒤지고 있던 중 '갈릴레이 서클'을 만났다.

갈릴레이서클은 사회학자 칼 폴라니가 만든 학생모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급진 혁명을 전개하던 비밀 결사단체에 가깝다.

폴라니가 초대 의장을 맡았던 갈릴레이서클은 1918년 헝가리를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물론 내가 만난 갈릴레이서클은 비밀스럽지도 과격하지도 않았다.

구성원이 청년이라는 것 말고는 원조와 큰 공통점이 없었다.

다만 언론인 지망생들이 모여 색다른 관점으로 정치를 해석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당시로선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석 정치.' 이것이 갈릴레이서클의 모토였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 기사가 쏟아져 나오던 시점이었다. 거대 정당의 공천 다툼을 중계하거나 유명 후보자의 동정을 전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갈릴레이 서클은 그런 주류 정치 위주의 보도를 넘어서고자 했다. 인지도가 없어 여론조사에도 이름을 못 올리는 소수 정당의 후보를 인터뷰했다. 정치 스캔들에 집중하는 대신 1426명에 이르는 예비후보자를 전수분석하기도 했다. 기성 언론이 관심을 보내지 않던 구석에 끊임없이 집중했다.

갈릴레이 서클에서 진행한 첫 번째 기획은 노인의 정치성향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는 전체의 21.9%로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여야 할 것 없이 그레이 파워(gray power)에 주목하며 노인 표심잡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노인이 어느 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예상은 대개 비슷했다. 야당의 한 정치인은 포기한 듯 노인 대신 청년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노인이 왜 보수적인지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기획회의에서 갈릴레이서클 팀원에게 말했다. "그런데 노인은 왜 1번을 찍을까요?"

물음표를 지우고자 했다. 여야가 제시한 노인 대상 공약의 선호도를 조사했다. 어느 정당의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노인이 선택한 공약과 실제 그가 지지하는 정당을 비교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노인 대부분은 여당을 지지했지만, 공약은 야당의 것을 더 선호했다. 공약이 중요한 건 아니었던 셈이다. 취재에 응했던 노인들은 하나같이 안보를 얘기했다.

인민군에게서 도망쳤다는 아흔 살의 노인은 북한이라면 치를 떨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험들이 오늘날의 표심을 만든 것이었다. 취재 전에는 답답하게만 보였던 이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반향이 있었다. 모 주간지에서 협업을 요청했다. 노인의 정치성향을 다룬 기사가 흥미로우니 취재를 보강해 매체에 실어보자고 했다. 다른 기획도 탄력을 받게 됐다.

지방의 청년 300명을 만나 투표성향을 물은 기사는 우리의 취재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였다. 처음 투표를 하게 되는 이들을 모아 대담을 개최해 취재 방법의 참신함을 어필하기도 했다.

SNS상에서는 야자뉴스라는 콘텐츠로 인기몰이를 했다.

멤버 한 명이 잠옷을 입고 "야 자?"라는 멘트로 시작해 정치 상식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구석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는 어느덧 중심에 서 있었다.

쉽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정치기사는 대부분 국회에서 생산된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기사가 되기 때문에 출입처 없이 정치 뉴스를 전하는 건 어렵다.

<고함20> 등 청년 언론은 많았지만 우리처럼 정치전문을 표방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자처한 덕분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정치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던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기자가 돼야겠다는 확신도 생겼다. 다만 '왜?'라는 물음이 '어떤?'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것에 답하기 위해 어니스트(Onist)의 기자로 활동 중이다. 갈릴레이 서클의 후신이다. 우리는 구석을 버렸다.

하지만 정치는 간직하고 있다. 양파(Onion) 껍질을 까듯 일상의 문제에 숨겨진 정치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여전히 정치는 어렵다. 더 어려워지기 전에 우리가 나섰다. 어니스트의 청년 기자들이 말하는 정치,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