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입추가 지났지만 나날이 무더운 한낮이 찾아온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도통 돌아다니기가 어렵다. 돌아다니기는커녕 씻고 돌아서면 땀이 흐른다. 여름이니까 낮이 길어졌을 테지만 가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짧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버텨야 할 한낮은 점점 길어지는 것만 같다.

캐런 톰슨 워커의 <기적의 세기>에는 낮이 점점 길어지는 세계가 등장한다. 일명 '슬로잉(slowing)' 현상으로 낮이 길어지는 만큼 밤도 길어진다. 슬로잉이 계속되어 여섯 달 동안 밤이 여섯 번 찾아오는 지경에 이르면서 사람들은 낮에 활동하지 못하게 된다. 태양이 오래 떠 있으니 지열의 온도가 점점 높아져서 피부는 물론 생체리듬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한낮을 피해 실내 어딘가에서 견디다가 밤이 되면 외부 활동을 한다. 그러나 그마저 여의치 않은 이들도 있다. 직장에 갈 일조차 없는 이들에게는 밤 또한 견뎌야 하는 시간일 뿐이다.

오래 지속되는 한낮과 그 열기 속에서 겨우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 사는 이 시간들이 비단 소설에만 있지 않다. 지금 여기의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 '한낮'의 세기(世紀)를 사는 중이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고통의 시간이 '한낮'이라면 현재 그 한낮을 견디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대 사건을 비롯한 자본주의로부터 '대학'을 지키기 위한 분투와 국민의 안전을 볼모 삼는 사드 배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문제까지.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은 태양이 되어 저마다의 머리 위에서 끓고 있다. 그뿐인가. 고통의 시간을 참아내고 마침내 찾아오는 '밤'은 고독의 시간이다. 해가 지면 누군가는 생업에 종사하러 나가지만 다른 누군가는 고독하게 그 '밤'을 지킨다. 이들은 낮의 숨막히는 뜨거움을 견디고 밤의 고독을 다시 견딘다.

이 소설의 원제는 the age of miracles이지만 번역된 것을 다시 오역해보았다. 긴 낮과 밤을 견디고자 하는 세기(strength)가 견딤의 날들을 끝나게 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직은 견디는 나날이다. /문학평론가


#문학 #기적의세기 #견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