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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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용산역에서 돌아오는 기차표를 예매하느라 장갑을 벗었었다. 커피를 주문하느라 카드를 꺼냈었다. 개찰구로 나가기 전 십오분간 서성이다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아마자 장갑이 한 짝뿐이라는 걸 알았다. 기차가 막 달리기 시작한 때였다.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는 동안 눈앞에서 간판들, 창문들, 지붕들, 헐벗은 가로수들이 달려 사라지고 있었다. // 또 사면 돼, 무심해지려고 애썼다. (중략) - 최정례 시인의 시 <한 짝> 중에서

'잃어버리다'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에 들어갈 단어들을 생각한다. '잃어버린 길',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계절', '잃어버린 이름', 입맛, 마음, 과거, 기억, 도시, 조국, 일상. 많은 단어들이 '잃어버린' 뒤로 줄을 선다. 그러고 보면 생은 늘 후회가 뒤따르는 것처럼 잃어버리는 것 투성이다.

문득 작년 여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떠오른다. 사람의 감정을 다룬 영화로 그중에서도 내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매일같이 구슬(기억)들은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겨지고, 그 가운데 오래된 기억들은 심연(深淵)의 쓰레기장으로 버려지는 과정이었다. 어떤 기억이 잘 안 떠오르는 건 그 구슬(기억)들이 쓰레기장에 버려져 색이 바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장하면서, 이 사회의 크고 작은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어느 사이엔가 순수하고 천진했던 감정들이 쓰레기장에 버려지고 색이 바랬다. 이제 나는 기쁨보다는 짜증과 까칠과 버럭을 가까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장갑이야 다시 사면 된다지만 그 장갑은 애초에 잃어버린 '내 장갑'이 아니라 보편성의 장갑일 뿐이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지금도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서성이는 사이, '눈앞에서 간판들, 창문들, 지붕들, 헐벗은 가로수들이 달려 사라지고 있었'듯이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획획 지나가버려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내 삶에서 영영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다. 장갑을 잃어버리는 일 없이, 새 장갑을 사는 일이 없이 말이다. 내 생애에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지켜야 할 꼭 한 가지만을 꼽아본다면 무엇이 될까.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