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편집장

제31회 리우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올림픽은 그리스 도시국가 간의 평화를 위한 신들의 제전(祭典)에서 출발하였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며 폐지되었다가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1896년에 재개되어 오늘에 이른다.

비록 세계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올림픽이 그리스·로마에서 기원한 만큼 서구 중심주의와 귀족주의, 엘리트 스포츠 제전이란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단적인 예가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이다. 그리스-페르시아(이란)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경기이기에 이란은 마라톤을 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올림픽에서 아마추어리즘의 순수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올림픽의 아마추어리즘이란 사실 귀족주의의 반영이기도 했다.

올림픽의 정신과 규칙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주었던 '헨리 온 템즈 로열 레가타'는 영국 왕실이 주최하는 대회로, 1839년 이래 각국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템즈 강변에 모여 8개의 우승컵을 다투는 세계 최고의 경조(競漕)대회이다. 1920년 제7회 앤트워프 올림픽 싱글 스컬과 더블 스컬에서 우승했던 미국인 존 켈리는 이 대회에 출전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왜냐하면 당시 대회 규칙에 "출전 자격은 신사에 한하며 노동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존 켈리의 직업은 '벽돌공'이었다. 비록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지만, 그는 훗날 누구보다 멋진 복수를 한다. 그의 아들 존 켈리 주니어가 1940년 이 대회에 참가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해 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멋진 일은 그의 손녀이자 존 켈리 주니어의 딸,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의 왕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올림픽이 국가 간의 메달 경쟁, 국력 경쟁으로 변질되었다지만 올림픽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국경과 승패를 넘어 소중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메달이 없어도 여러분은 이미 진정한 승자이며 우리는 그 사실에 감사한다. 보는 이 하나 없는 곳에 핀다한들 꽃이 아니랴, 인생은 길다.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