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예총 사무처장
▲ 인천예총 사무처장

폭염이 무차별로 쏟아지며 계속된다. 더위에 못살겠다, 죽겠다는 말이 은유가 아니라 말 뜻 그대로 체감하는 요즘 짜증이 만발이다. 잠시 잠깐 짜증을 걷어낸 일은 부평고가 전국고교축구대회 우승 그리고 동산고가 대통령배전국야구대회를 재패했다는 것 빼고는 없는 것 같다.

살인적인 더위보다 더 짜증나는 이야기가 있어 완전 짜증이다. 지난 2012년쯤, '미추홀 2000년 정명 600년'의 T/F팀원이었던 본인은 서너 차례 회의를 거듭해 인천의 역사와 정명 600년을 담는 조형물(기념비)을 설치하기로 결정했으나 유야무야로 끝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 기념비가 이듬해 조각 작품으로 결정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광장에 세워진 것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구나 하며, 신문을 보고 또다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광복절이 있는 연휴, 더위를 꾸겨 주머니 속에 처박고 '표절시비'의 서울 마포에 설치된 '날고 싶은 남자' 작품을 보러 갔다. '날고 싶은 여자'는 이미 여러 번 봤던 터이다. 조각에 대한 지식이라곤 귀동냥으로 얻은 것 뿐이다. 그저 일반시민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조각작품이 '여자'와 '남자'라는 것도 신문(인천일보 2016년 8월5일자)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공공장소에 그것도 '정명 600년'의 의미를 담고 선 조각상이라면 일반시민의 시선에서 성별을 구분하기가 용이했어야 한다. 왜 서울의 조각상과 인천의 정명600년의 조각상이 다 '날고 싶은' 조각상이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조각가(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작품을 두고 이어령 비어령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설득력 있게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종구 교수는 "두 개의 인체가 완전하게 복제된 자기 표절이라 하더라도 맥락을 달리했을 때 결코 표절이 아닌 새로운 창작으로 보는 것은 오늘날 미술에서 상식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인체상을 볼 때 '팔의 방향'이나 '발의 움직임' 내지는 '가슴을 내민'모습이 누가 봐도 너무 닮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계의 상식은 정말 바꾸어야 함은 물론 일반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땐 시쳇말로 '짝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재료가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주위에 조형물을 더 설치했다고 해도 다를 것 없는 것 같다. '자기표절'이 아니라는 것을 수사(修辭)할 뿐 주된 조각의 모양은 너무나 흡사하니 달리 말 할 것이 없는 것 아닌가.

'정명 600년'을 담고 다중의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목적의식을 가지고 설치되는 기념의 조각상이라면 서울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것이 아니라 다른 영감을 찾을 수 있도록 작가는 끈기와 인내, 고뇌를 거듭 했어야 한다.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의 현상이라면 탈 모더니즘의 작가적 역량을 발휘해 제작된 '인천 정명 600년'에 임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작품제작 초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3주 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예전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작가는 시간을 더 요구했어야 한다. 또 자문진은 3주만에 밑그림이 그려질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대처했어야 한다는 것을 탓하고 싶은 것이다.

자문진 구성에도 문제가 있는 금번의 사태가 잘 해결되기를 기대하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명 600년' 그리고 '미추홀 2000년'은 바로 인천광역시의 역사를 담고 표현된 말이다. '날고 싶은 여자'를 볼 때 마다 시민의 입에서 나오는 후담을 언제까지 흐르게 둘 것인가를 생각하며 '정명 600년'의 상징물(조각)이 좀 늦게 만들어 진다고 한들 어떠할까 생각한다.

이참에 다시 시민의 의견을 담고 전문가의 조언을 실어 공모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번 '인천정명600주년기념비'의 표절시비는 인천이 '정명 600년'을 넘어 천년만년으로 가기 위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 /인천예총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