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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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존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고유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고유함이 없다면 인간은 시간이 되면 꺼지는 기계처럼 패턴에 의해 소비될 뿐이다. 패턴에는 매혹이 없었다. 타인이 지겨운 것은 관계를 맺기 위해 그런 패턴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환멸에는 그나마 고독이 위로가 되었다. 환멸을 완성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염증이었다. - 은희경의 장편소설 <태연한 인생> 중에서

더워도 너무 덥다. 열대야에 어쩔 수 없이 방을 포기하고 식구들 모두 거실로 나왔다. 방에는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거실에 얇은 패드를 깔고 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28도에 맞춰놓고 세 시간 설정을 해놓는다. 에어컨 앞에는 선풍기를 틀어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밤중에 더워 잠에서 깨보면 에어컨은 어느새 꺼져 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일어나면 잠을 잔건지 모를 정도로 몸은 찌뿌둥하고 정신은 개운하지 않다. 전기료 폭탄이 더위보다 무서우니 어쩌랴. 이놈의 전기 누진제. 어마어마한 누진 단계에 욕이 저절로 나온다. 정말 소송에라도 참가해야 되는 건가.

길거리를 가다 보면 문 열어놓은 가게에서 냉기가 쏟아져 나온다. 더위를 피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보면 추울 정도이다. 산업용과 업소용 전기엔 누진제가 아예 없기에 상대적으로 전력을 쉽게 쓴다. 1도를 더 낮추느냐 마느냐로 실랑이 하는 우리집과는 대조적이다. 전체 전기의 13%가량을 쓸 뿐인 가정에 누진제를 적용해 전기를 아끼려하는 건, 전 국민을 더위 앞에 볼모로 삼는 격이다.

인간이 매력이 있는 건 개인마다 각기 다른 '고유성' 덕분이다. 서로가 이름을 불러주는 관계가 되려면 이 고유성이 갖고 있는 개인의 장점뿐만 아니라 감추고 싶은 단점까지 다 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단점은 장점까지 다 덮어버려 차라리 관계를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최소한 국민을 생각한다는 위정자들이 매력 없는 기계가 아니라 고유성을 가진 개인, 그것도 매력 있는 개인이면 좋겠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런 날엔 모든 관계를 포기하고 차라리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일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