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윤 인천대 객원교수

고대 그리스 도시 외곽에 <아테네학당>, 즉 김나지움(gymnasium)이 있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운동 경기를 벌이고 훈련하는 일종의 경기장 내지 체육관이었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신을 찬양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근육 움직임을 생생히 보여주기 위해서 나체로 경기를 벌였고, 우승을 큰 영예로 삼았다. 또한 선수는 물론 일반 시민에게 목욕과 치료의 장소였다.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그곳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및 학술의 토론 장소였으며, 대학과 같은 곳이었다. 그리스 아테네학당으로 특별히 세 곳이 유명했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Academy),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케움(Lyceum), 디오게네스가 이끌었던 시노사게스(Cynosarges) 등이다. 그 중 '아카데미'는 훗날 학문의 전당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아카데미에서 플라톤이 탐구했던 질문은 최근까지 인류 지성사의 핵심 탐구 주제가 됐다. 그 질문은 올해 특별히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는 알파고(AlphaGo)와 같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넘어서야 할 주제이다. 왜 그럴까? 플라톤은 아카데미를 세우고, 그 문 앞에 이렇게 써놓았다고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라.'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고, 피타고라스 기하학을 공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기하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의문을 발견할 것일까? 자신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에, 운동장 바닥에 결코 완벽한 도형을 그려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과 학생들이 그런 대략적인 그림을 보면서, 기하학 지식에 대해서 대화하고 이해함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여러 둥근 원 그림 중에 어느 것이 더 둥근지를 단번에 알아본다. 그렇게 하려면, 학생들은 기하학을 공부하기 이전부터 완벽한 도형이 무엇일지 이미 선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림과 같은 대략적인 도형을 보면서 우리는 각도A-C-B가 얼마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실제 그 각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완벽한 도형을 그려야 하거나, 정교한 측정은 필요치 않다. 너무도 진기한 일이었다. 우리는 완벽한 원과 여러 도형들의 모습을 본 경험이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요즘 식으로 표현하여, '원(circles)'이란 추상적 개념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플라톤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대담한 소설을 썼다. 우리 영혼은 죽지 않으며, 그것이 육체와 함께 태어나기 이전에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모든 진리를 보았지만, 현세에 태어나는 순간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선생이 도형을 그려 보여주는 순간 그 잊은 것들을 다시 회상해낼 수 있다. 이런 소설적 이야기에 큰 의미를 두고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를 열심히 탐색하고 이야기하는 인문학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왜 그러한 생각을 하였는지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이제 그런 이야기는 내다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의 질문을 진짜 중요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개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을 사람으로 알아보려면, 이미 사람이란 개념(concepts)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인공지능이 무엇을 그것으로 알아보려 한다면, 그에 앞서 알아보려는 것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개념이란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개념'이라 칭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을 모른다면, 그것을 인공지능이 발휘하도록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알파고의 소프트웨어에 적용된 신경망(Neural Network)의 하드웨어 제작을 중요 과제로 선정했다고 한다. 시기에 아주 적절한 과제 선정이다. 혹시 이미 상당한 연구에서 나온 자신감의 선언은 아닐지 기대해본다. 앞으로 전자기계가 창의성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에서 국가 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경망 하드웨어 연구자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플라톤의 의문이다. 약 2400년 전의 아테네학당에서 던졌던 질문은 현재 첨단 과학 연구소가 대답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