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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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채소와 과일이 냉장고를 채웠다. 그녀는 친환경, 저농약과 무농약, 유기농의 아슬아슬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에 반응하면 할수록 그녀는 점점 더 강력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은 세계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무지 때문이야. 세상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곳인지에 대해서 무감각해져 있을 뿐이라고." 그가 포도를 껍질째 삼킬 때면 그녀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최정화의 소설 '오가닉 코튼 베이브'

지금 전국은 영·유아 등 143명이 폐 손상으로 숨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으로 뜨겁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은 "2003년 무렵에는 유독물질에 해당할 정도의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란 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정부 스스로 인정했던 위험물질이 버젓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까지 됐을 정도였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게다가 수백 명을 죽게 하고, 평생 산소호흡기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두고, 뒷돈을 받고 실험결과를 조작해준 교수, 뒷돈을 준 옥시, 그렇게 압력을 넣은 법무법인 등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추악한 실체보다 더 경악스럽게 만든다. 그야말로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점점 더 강력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과연 가습기 살균제만 문제가 있을까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돈과 권력이면 무엇이든 무마하는 이 잔혹한 현실에서 그저 평범하게,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당장 내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들은 안전한가,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나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용했던 제품들은 안전한가 의심하게 된다.

버젓이 보이는 비리를 단호하게 해결하지 않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달래지 않는다면 나도 언젠가 저런 일을 당하면 저렇게 버려지겠구나 절망하게 된다. 그 절망을 달래는 길은 철저한 진실규명이다. 매번 뒷북을 치며 조사하는 척이 아니라 하늘 아래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믿고 살 수 있도록 명명백백한 규명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