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내 마음의 불안은 그야말로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것은 일종의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오랜 세월 페치카와 램프의 그을음에 찌든 벽 구석 선반에 놓여 있는 한 권의 시집이 내 마음을 그렇게 평온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도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 시집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집이었다. 거기에 푸슈킨의 이름이 있었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에비치 푸슈킨' -윤후명의 소설 '여우 사냥' 중에서

지금 여러 지역에서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경쟁이 뜨겁다. 국립한국문학관은 한국문학 관련 유산을 집대성하고, 연구·전시·교육하는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오는 2020년 개관을 목표로 총 사업비 460억원을 투입해 건립할 예정이다. 인천 역시 공항과 항만을 가진 지리적 접근성, 한국 최초의 근대문학관 보유로 인한 근현대 문학의 연계를 내세워 유치를 추진 중이다. '잘 되면 좋고'의 관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문인들이 알아서 할 일도 아니다.

얼마 전 '유네스코 지정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이 1년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될 만큼 인천은 팔만대장경 등 우수한 기록문화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또 바다와 섬을 끼고 있는 인천은 개항기부터 문학의 배경이 돼 왔다. 그럼에도 인천은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국립문화시절조차 없는 문화의 변방이나 다름없었다. 인천에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해 인천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문화도시로서의 긍지를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러시아의 한 산골집, 우락부락한 사냥꾼들 틈 속에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때, 벽 구석 선반에 놓인 시집을 보게 된다. 그리고 푸슈킨이라는 이름을 더듬어 읽는다. 한 순간 눈 녹듯이 녹은 불안감! 여우를 사냥하는 거친 사냥꾼이 사는 집 선반에 시집이 있다니. 사냥꾼이 페치카 앞에서 시를 읽어 내려가는 장면! 문학이 삶에 녹아 있어야 한다. 문학은 문학으로 오롯할 때 가장 빛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