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학교 스포츠복지과 교수

최근 체육단체의 수장이 한명의 선수를 위해 인터뷰를 자처했다. 바로 우리나라 수영의 간판선수가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인천시 체육회의 회장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본보 2016년 5월2일). 논리가 옳고 그름을 따짐에 앞서 한명의 체육인을 위해 나선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한명의 체육인이 바로 박태환이다. 박태환을 생각하면 늘 연상되는 노래가 있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란 만화다. 이 만화는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푸른 바다 밑에서 잘도 싸우는, 슬기롭고 씩씩한 용감스러운, 마린보이 소년은 우리 편이다" 란 노랫말이 일품이었다. 단순한 멜로디와 우리 편이라는 가사는 당시 아이들에게 분명 매력적이었다.

노래의 가사 말과 가장 비슷한 한국의 수영선수를 뽑는다면 단언 컨데 박태환일 것이다. 그와 인천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3월28일, 그는 전격적으로 인천시청 수영부에 입단한다. 그가 인천시청에 입단 한 것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 흥행과 인천의 수영꿈나무 발굴을 위해서라고 했다(본보 2013년 3월27일). 그의 등장은 인천수영발전, 인천체육 발전에 큰 기대감을 더했다.

박태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4관왕을 달성하며 대회 MVP를 차지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대회에서도 그는 수영 남자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 한국 수영 44년 만에 기적을 일궈냈다(송홍선, 정동식, 2011: 2259). 그의 금메달은 대한민국 수영 역사상 최초였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그는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또다시 은메달을 획득한다. 그야 말로 한국수영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한국수영의 대들보다. 그가 인천시청에 입단한 것이다. 그리고 곧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렸고, 그는 4관왕을 달성(본보 2013년 10월23일)하며 자신을 불러준 인천에 보답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 인천은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다양한 경기장을 신설하였다. 그 중 유독 주목되는 경기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학박태환수영장'이었다(본보 2013년 6월17일). 당시 인천시는 공공성과 수익성을 감안하여 명명권 활용 방안을 검토, 그의 이름으로 수영장이름을 쓰고, 수영 유망주 육성을 위한 재단도 설립할 계획이라고 했다(본보 2013년 4월1일). 박태환의 영입에는 크게 찬성했으나 수영장 이름까지 내어준 인천시의 이러한 결정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반대 논리는 간단했다. "그가 인천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해주었기에 인천수영장의 이름을 내주는가(조준호, 2014: 447)."서울에서 태어나 강남에 위치한 도성초등학교와 대청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기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그와 인천의 인연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연이라고 한다면 아마 인천에서 열린 수영대회에 그가 참가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이젠 인천체육사의 한 페이지를 그가 장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천에는 박태환이 있지 않는가?" 하는 말을 주변에서 듣게 됐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그는 6개의 메달을 대한민국에 선사했다. 당시 인천시민들도 덩달아 신이 났었다. 하지만 곧 해당 메달은 최근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모두 박탈됐다. 박탈은 국제수영연맹(FINA)의 징계였고 해당 징계는 2016년 3월 2일부로 종료되었다(본보 2015년 3월24일). 하지만 그의 리우올림픽 출전은 대한체육회의 규정에 의해 불투명한 상태다.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마린보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그에게 열광했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대회에서 좌측에 미국의 성조기, 우측에 중국 오성기를 아우르며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린 것도 바로 그였다. 시간이 흐른 뒤, 인천체육사에는 분명 그가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천에서만이라도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 편 '마린보이'의 꿈이 꺾이지 않도록 말이다. /서해대학교 스포츠복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