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의 민중봉기]


올해 6월항쟁 28주년 … 미국 정치학자 '韓 민중봉기' 책 출간
1894년 농민전쟁 ~ 2008년 美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등 다뤄
'엘리트보다 더 훌륭한 보통사람의 집단적 지혜' 생생히 증명



봉기(蜂起), '벌 떼처럼 떼 지어 세차게 일어남'. 우리사회에서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큼 불온하게 여겨지는 단어는 몇 안될 것이다. 특히 '레드컴플렉스(Red Complex, 극단적 반공주의)'에 치를 떨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봉기'는 더더욱 그렇다. 어찌보면 '봉기'라는 단어가 '역성혁명'의 또 다른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민중봉기는 변혁의 시작점이자 첫 발걸음이었다. 1987년 6월항쟁 28주년인 올해, 한국사회의 민중봉기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한국의 민중봉기>는 미국의 좌파 정치학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쓴 책으로 1894년 농민전쟁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까지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민중봉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는 한국과 아시아의 다양한 민중봉기 현장에서 이름없는 민중들이 어떻게 협력하고 역사를 만들었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봉기는 사회 변화의 꽃봉오리이고, 그것이 피어날 때 미래가 된다"고 역설한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역시 1980년의 5·18이다. 카치아피카스는 사태, 민주화운동, 민주항쟁, 민중항쟁 등 다양하게 불리는 5·18을 일관되게 '민중봉기'로 규정한다. 그는 1980년대 아시아 민중봉기의 출발점은 80년 광주이며, 광주는 '20세기의 파리코뮌'이자 '민중의 저항과 자치 역량에서 세계사적 정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최정운 서울대 교수가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절대공동체'라고 명명한 광주의 풍경에 특히 주목한다.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정치적 의견과 마음을 나눈 모습은 곧 직접민주주의의 체현이었다는 것.

이처럼 저자에게 봉기는 '이해의 프리즘'이며, '사회의 핵심적 본질을 들여다보는 커다란 창문'이었고, 그는 봉기자들의 실천이 어느 철학자와 전문가들의 이론보다 더 뛰어난 이론적 가치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20세기 말의 봉기들은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지혜가 엘리트들의 지혜보다 더 훌륭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거리로 나서 폭력과 체포에 노출되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궁극적으로 자유의 가능성을 확대했다.

부자 감세, 국민 주권의 확대, 기업 이윤 보호에 노심초사하는 엘리트들과 달리,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이 가슴 깊숙한 열망으로 평화, 더 많은 민주적 권리, 평등, 진정한 진보를 원한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됐다.

카치아피카스가 민중봉기에 대해 마냥 낙관적인 입장을 피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근대 혁명들도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설명한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 지역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완벽한 사회를 향한 인간들의 이런 시도"는 종종 실패했지만, 엄청난 성과도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지음, 원영수 옮김, 오월의 봄, 712쪽, 3만5000원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