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사회부장

중국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북방민족을 견제하기 위해 수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산성을 쌓았다.

기원전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해 진시황제 때에 본격화되었던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절 그 절정을 이뤘다. 여기에 동원된 민초들만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는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지만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만 하다. 진나라 시절부터 명나라까지 수백 년 동안 만리장성으로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았던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진나라가 망한 건 만리장성을 넘은 흉노가 아니라 가혹한 정치에 반발한 농민들의 봉기와 이를 바탕으로 세워진 초나라·한나라에 의해서다.

특히 대대적인 보수 보강 공사를 벌인 명나라 시절 그 길이만 해도 2만 킬로미터에 달했다고 하지만 명나라가 망한 것 또한 만리장성을 넘은 몽골이나 청나라 때문이 아니었다. 부패한 명 조정에 반기를 들은 이자성 난 때문이었다. 명 왕조가 무너지자 명나라의 정예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오삼계라는 장군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 산해관의 문을 열고 청나라에 항복함으로써 명의 시대가 마감하게 된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 장벽이 또 다시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 집권초기인 지난 2008년 미국 소고기 광우병 사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된 대규모 촛불집회를 막기 위해 컨테이너로 바리케이드를 쌓아 만든 명박 산성은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나아가 전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국제적 망신거리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 후 7년이 지난 2015년 근혜장벽이라 이름 붙여진 차벽 바리케이드가 광화문에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진상규명과 사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잃고,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유가족에 앞에 1년 만에 나타난 것은 따뜻한 위로의 손길이 바로 차가운 바리케이드였다. 대규모 충돌도 이어졌다. 많은 사상자들도 발생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충격을 받을 만하다.

이명박 정권이 산성을 쌓고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명박산성을 쌓아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지킬 수 있었을까. 한 순간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후대가 평가한다고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로 시작된 일명 '성완종 리스트'로 나라가 시끄럽다. 불법적으로 돈을 건넨 명단을 적은 메모에는 정권의 핵심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전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현직 국무총리에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아직 검찰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이들이 불법적인 돈을 받았다면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인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치명상을 안겨줄 우려가 크다.

근혜장벽이 이들을 지키기 위함을 아닐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아랫것(?)들의 과잉충성이 빚은 결과물 정도로 믿고 싶다. 이미 이명박 정권에서 그 효용성이 다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만리장성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에 숨어 잠깐의 권력의 안위를 구했지만 오히려 민심과 멀어져 정말 지키고 싶었던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광화문 앞에 쌓아올려진 장벽으론 그 무엇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이젠 장벽을 걷어낼 때다. 단지 눈에 보이는 장벽 따위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세대를 위해 해결해야 할 수많은 장벽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영호남을 가로막은 지역 장벽과 극단적 가치관 차이로 대변되는 세대별 장벽, 군사적 대치상황을 이어가고 있는 남북 간 장벽, 나아가 국가를 넘어선 경제장벽과 종교장벽까지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이젠 장벽을 쌓지 말자. 장벽을 걷어내고 포용과 관용의 시대로 가야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