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출신 메달리스트 릴레이 인터뷰(9) - '그라운드의 풍운아' 이천수(축구)
▲ 인천일보와 만난 이천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천수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한 축을 담당했으며 같은 해 열린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남자축구 동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지난 8월2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현대 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4 2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는 이천수. /사진제공=인천 유나이티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 부산 대회 銅

"팀 후배 문상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선수" 칭찬

"그동안의 사건·사고·구설수 모두 내 잘못" 자책

"난 아직 많이 부족해 … 여전히 운동 즐거워"



현재는 손흥민(22·레버쿠젠)이 단연 축구천재로 불린다.

그 이전에는 박주영(29)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누구나 '이천수'를 꼽는다.

20세의 나이에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역사도 만들었고, 이어 열린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이어 스페인에 진출하는 등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풍운아라고 한다.

축구계에 풍운아가 있다면 이천수를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축구계의 '풍운아' 이천수를 인천 유나이티드 훈련장에서 만났다.



▲한국 아시아 최강 … 문상윤 정확한 크로스가 강점

"한국축구의 실력은 이미 아시아 최정상입니다. 고향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28년 만에 금메달을 기대해 봅니다."

고향인 인천으로 팀을 옮긴지도 1년이 넘은 지금, 이천수는 아시아경기대회가 고향에서 열리는 일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명실공히 스포츠 으뜸도시로 우뚝 선 인천에서 28년 만에 정상탈환을 노리는 것이다.

이천수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진 않는다. 하지만 앞선 2번의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경험에 비춰봤을 때 앞날이 밝다는 것이다.

이천수는 "과거 2번의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때 사실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로 나는 사실상 군 면제를 받은 상황이었다"며 "후배들의 군 면제 기회를 뺏은 것 같아 미안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천수는 같은 팀 동료 문상윤을 비롯해 후배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경기대회를 더 큰 무대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으면 한다"며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국가대표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팀'인 만큼 단합력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동의 침대축구 등에 대처해 팀 전체의 의견을 조율, 서로 양보하는 플레이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상윤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이천수는 "문상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선수'다"라며 "세트플레이 등의 상황에서 정확한 '배달'을 할 수 있는 선수다. 와일드카드인 김신욱(26·울산)과 호흡이 좋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작은 선수'에서 월드컵 4강, 이후 스페인 진출까지

"작은 선수는 할 수 없다." 이천수는 어릴 때부터 늘 듣고 자란 말이 있다.

그 말이 지금의 이천수를 있게 했다. 강해졌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었다.

이천수는 "과거 신호철(現 부평동중 감독) 코치님의 '너만의 무기를 만들라'는 조언을 듣고 기쁜 날이든 안 좋은 날이든 계속해서 슈팅연습을 했다"며 "그때의 연습이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의 골을 만든 발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천수의 축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002 한·일 월드컵이다.

이천수는 "정말 눈떠보니 2002년이었다"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당시 축구에 대해 잘 몰랐다. 팀이 잘한 경기를 무조건 내가 잘했다고 생각했었다"며 "자만했던 게 맞는 것 같다. 무작정 스페인(레알 소시에다드)으로 떠났다. 하지만 스페인 선수들은 정말 이름 모를 선수까지 너무 잘했다"고 말했다.

문화, 언어 등을 핑계대지 않았다.

성숙해진 이천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정말 스페인 선수들의 볼 컨트롤은 예술에 가까웠다. 한번 공을 잡으면 절대 뺏기는 법이 없었다. 너무 새로운 세상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해외 축구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네덜란드를 먼저 거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고 덧붙였다.

이천수는 "아직도 잉글랜드 리그에서 못 뛰어본게 한이 된다. 과거 풀럼 등의 팀에서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가지 못했다"며 "여러모로 참 아쉬운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폭행사건, 씻을 수 없는 잘못" … 힘든 시간 보내

이천수만큼 축구인생의 굴곡이 확실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2002년, 스페인 진출 실패 후 독일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며 다시 한번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 여러 나라를 거쳤다.

다사다난한 인생에서 구설수도 많았고, 결국 사건도 터졌다.

과거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천수는 "요즘은 거의 술을 안먹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공인으로서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관해서는 이견이 없다. 모두 내 잘못이다. 당시 기분을 컨트롤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나 고향인 인천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후에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심경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이천수는 "흔히들 공인에 대해 '모자를 눌러쓰고 사는 인생'이라고 한다. 떳떳한 행동을 했고 아니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관심에 힘들어질 때가 있다"며 "특히나 어린 나이에 대중에 알려지다 보니 어느 순간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다"며 한숨 쉬었다.

그는 "유명한 축구계 선배들이 모자를 쓰는 모습을 보고 '왜 모자를 쓰고 다니세요?'하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참 행복하게 운동했는데, 나를 알리고 싶어 항상 얼굴을 드러내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내가 자연스럽게 모자를 쓰고 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후배들에겐 항상 모자를 벗으라고 말한다. 당당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도 축구가 즐거워 … 공부해 지도자 뜻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천수는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한국축구선수로는 다양한 기록도 갖고 있고, 월드컵 4강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둔 장본인이기도 한 그가 부족한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졌다.

이천수는 "축구 아닌 공부가 하고 싶다. 나는 좀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인생의 반환점도 돌지 않은 상태다. 은퇴 시기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은퇴 후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설명했다.

어렴풋이 지도자의 길에 대한 뜻도 내비쳤다.

이천수는 "축구에서 이루지 못한 부분도 많다"며 "이런 것들은 제자나 후배들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는 2년만 더 현역으로 뛰라는 말을 한다. 아직 축구가 즐겁다"며 웃었다.

이어 "먼 훗날 후배들이 '이천수'를 생각했을 때 '천수형이랑 공을 찼던 때가 즐거웠다'고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글 김근영·사진 황기선 기자 kky8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