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창수 인천개성공단 입주기업 협의회장
근거리·北 근로자와 대화 이점
개성서 제품 광내기 2차 가공
공단 폐쇄로 판로 끊길까 애타
기능공 되기까지 수 년간 훈련
하루빨리 정상화 됐으면
   
▲ 박창수 인천개성공단 입주기업 협의회장이 개성공단이 중단돼 광을 내지 못한 그릇들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인터뷰/ 박창수 인천개성공단 입주기업 협의회장

박 회장이 운영하는 창신금속은 가정용 뷔페용기로 미국 식탁을 점령했다. 미국 코스트코와 거래하며 지난 2000년 1000만달러 신화를 썼다.

스테인레스 분야에서 손꼽히며 1990년대 말부터 얼마전까지 한국기물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지냈다.

궁금했다. 공장 운영에 위험이 큰 '개성'이 아닌 중국, 베트남 등으로 진출하지 않은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렇다면 공장 폐쇄 위기까지는 가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다.

"중국,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 중 사기 한번 당해보지 않은 기업 있습니까. 개성공단은 우리 말로 북측 근로자와 대화를 할 수 있단 최대 이점이 있고, 거리가 가까워 아침에 제품을 보내면, 오후에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개성공단이 암묵적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남북 정부를 믿고, 투자하지 않았겠습니까. 근데, 이게 뭡니까."
개성공단 공장에는 북측 근로자 85명이 근무했다. 박 회장과 직원 1명이 아침에 원자재를, 저녁에는 완제품을 싣고 개성과 인천을 오갔다.

그동안 인천 공장은 원자재에 대한 1차 가공만 담당하며 직원도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인건비는 인건비와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해 대략 150~200달러, 인천 공장에는 한달 210만원 꼴로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 후 인천 공장 인원을 29명으로 늘렸지만, 이직률이 높다.
"아침에 출근해야 직원이지, 하루가 다릅니다."

박 회장은 이 대목에 한숨을 뱉었다. 개성공단 폐쇄가 길어지며 해외 바이어와의 계약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하루 수천만 원씩 손해를 보며 인천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온 신경은 개성공단에 있다.

"개성공단 페쇄로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금껏 개척한 해외 판로가 끊길 수 있다는 점 입니다."

박 회장의 개성공단 진출은 처음부터 험란했다. 2000년 초 기물조합장 신분으로 개성공단을 여러번 오갔다. 이 곳에 공장을 짓고 운영하면 성공할 것이란 자신감도 컸다. 이에 2010년 개성공단 입주를 결정해, 부지 매입에 들어갔다. 그러다 5·24조치가 터졌고, 통일부가 공장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다.
 

   
 


겨우 타 업체가 운영하던 공장을 임대했지만 얼마전 공장 1층이 불이 났다. 하지만 통일부의 개성공단 입주 명단에 '창신금속'은 없는만큼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았다. 겨우 인천지역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탄원으로 통일부가 '창신금속'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식'은 아니다.

개성공단 폐쇄 후 정부 지원책도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사이에는 '쥐약'이라며 받기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최근 인천시가 인천지역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실비로 이자를 지원하는 게 '가뭄에 콩 나듯' 고마울 뿐이다.

현 회장직함도 공식 기업이 아닌 만큼 조금은 어색하다. 정부 지원책도 정작 본인 회사와는 관련이 없어 오직 회원사의 혜택 지원에 봉사 중이다.

박 회장은 "국민들이 개성공단 폐쇄 후 정부가 손해비용을 지원하는 줄 아는데 솔직히 한 푼도 없다"며 "인천시가 결정한 이자 지원이 실비 보상으로는 전부다"고 하소연했다.

북측 근로자도 걱정이다. 개성 공장 운영 3년, 북측 근로자도 어느 정도는 기능공이 됐다. 그들은 우리처럼 '찾아서' 하는 노동이 아니다. '시켜서'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수동적 행동에 기능공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원자재의 광을 내고, 성형 하는 데 익숙해졌다.

개성공단 폐쇄가 길어지면 북측 근로자들이 뿔뿔이 흩어질 게 뻔하다. 처음부터 훈련시켜 기능공이 되기까지 다시 수 년이 필요하다.

이러한 무형적 손해까지 가름하기 어렵다.

박 회장의 말투가 어색했다.

70일 전 안면신경마비 일명 구완와사로 왼쪽 얼굴에 이상이 왔다. 외모는 정상이지만, 아직 말이 조금씩 흐른다. 사진 촬영 도중 자리를 바꾸며 신경을 썼지만 개성공단만 생각하면 자꾸만 입술이 왼쪽으로 움직인다.
 

   
 


12일 열릴 남북 당국회담에 대해 '기대반 걱정반'의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멈춘 개성공단이 가동되면 좋죠. 근데 남북이 전격 합의할까요. 합의 후 얼마나 걸릴지 하루라도 빨리 합의해 정상화를 바랍니다."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면 지게차의 신형 배터리를 사가지고 갈 겁니다. 너무 오래 멈춰서 지게차 배터리가 방전 됐을테니까요."

박 회장 고향은 평양이다.

박 회장 아버지가 평양 평천리에서 '미야꼬' 사진관을 했다. 그러다 9·28 서울 수복 때 서울에 터를 잡았다. 2002년 육로로 개성에서 평양을 갈 때 북측의 하늘과 땅에서 잊었던 '고향'을 떠올렸다.

박 회장의 개성공단의 꿈, 바로 "고향에서 자기 밥그릇이라도 만들 기술을 전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개성공단에 기대를 거는 것이고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스테인레스 그릇이 소중한 겁니다"이다.

/이주영·장지혜기자 leejy96@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