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공장을 돌려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절규
   
▲ 지난 4일 오후 콜트악기 농성자들이 공장 지붕에 올라 경찰과 법원의 대집행에 항의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5일 콜트악기 공장 점거농성 4일째.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정리해고 규탄한다 공장을 돌려라" 창문 밖으로 기선 활동가와 장석채 콜텍 사무장이 몸을 내밀고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1층 현관으로 경찰이 계속 밀려 들어오고 잠시 후 문 밖으로 경찰의 기합소리가 들려온다. '쾅. 쾅. 쾅' 소파로 막은 문을 두고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과 심자섭 부지회장이 있는 힘껏 막고 서 있다. 뒤이어 그들의 등 뒤로 도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막고있던 문이 들썩거릴 때마다 여지없이 지렛대가 그 틈을 헤집는다. "폭력 경찰 물러가라." 2층 농성장에서는 경찰 투입을 규탄하는 농성자들의 절규어린 외침이 울려퍼졌다. 수 분간의 밀고 당기는 진입작업 끝에 문이 열렸다. 물 밀듯이 밀려들어온 경찰들은 흩어져있던 농성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10분. 단 10분에 불과했다.

법원 대집행 하루만에 재점거'

다치지 말자·웃자' 서로 격려

64시간후 농성장 다시 쫓겨나


지난 2007년부터 2197일째 이어진 콜트악기 농성장의 시간이 멈추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지가 들려나오고 창가에서 공장 밖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기선 작가와 장 사무장은 맨 마지막으로 끌려나갔다.

마지막까지 콜트악기 부평공장 농성장을 지키던 13명의 노동자와 작가, 활동가들은 그렇게 경찰에 이끌려 공장 밖 경찰버스에 실려 인천계양경찰서, 부평경찰서, 서부경찰서로 제각기 흩어진 채 연행됐다.

지난 2일, 법원의 대집행 하루만에 되찾은 공장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가던 콜트악기 조합원들과 농성자들은 농성 4일, 64시간 만에 다시금 공장 밖으로 끌려나간 채 경찰서로 내쫓겼다.

연행 작전이 이뤄지던 당시.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할 미란다 원칙 고지는 없었다.

창틀에 올라가 시위를 이어가던 농성자들을 위한 안전매트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 임박 … 긴장감보다 웃음
지난 4일 저녁. 콜트악기 공장 농성장에서는 긴장감보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곧 경찰이 들이닥칠 것을 알고 있지만 예상한 결과였다. 경찰 투입 소식을 들은 콜트콜텍 조합원을 비롯한 농성자들은 조심스레 숙소를 1층 정진경 작가 작업실에서 2층 작업실로 옮긴 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저녁을 먹고 회의를 했다.

"절대 다치지 말자, 잘 될거다."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저녁 농성자들은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14명의 농성자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농성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공장을 방문한 길벗 한의사 모임 소속 한의사가 조명을 들었다.

다들 치료를 하기 위해 방문한 한의사, 취재를 위해 농성장에 머무는 기자가 각기 조명과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촬영하자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처럼 기자와 의사를 부려먹는 사람들은 없을겁니다"는 성세경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직부장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농성장 내 남아있던 소주를 한 잔씩 나눠먹으며 서로 불침번을 정했다.

1층 농성장에서 경찰 투입을 대비해 2층으로 잠자리를 옮기며 그제서야 서로들 농성장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임박해오고 있음을 느끼는 듯 했다.

다들 말 없이 잠자리에 누워 몇 시간이 될 지 모를 잠을 청했다. 그렇게 태풍의 눈 한가운데 그들은 서 있었다.

▲경찰 투입 … 10분만에 상황 종료

5일 새벽. 밤새 불침번을 서며 바깥 상황을 살피던 박남규 활동가가 분주히 움직이며 2층 숙소로 올라왔다. 함께 불침번을 섰던 장 사무장도 곧바로 1층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경찰 병력이 지금 계속 들어오고 있고 정문 병력들이 헬멧쓰고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박 활동가의 말에 다들 분주히 움직였다.

방종운 지부장은 서둘러 출입문 앞으로 소파를 놓고 철사와 노끈으로 묶기 시작했고 박 활동가는 창문을 통해 경찰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러는 사이 전화가 울렸다. 경찰 관계자였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내게 "김 기자, 곧 작전 시작될 것 같은데 왠만하면 내려오는 게 어떨까"는 말을 전하며 곧 경찰 병력이 투입될 것을 알렸다.

사진을 찍고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 내려갈 수 없다는 대답을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농성자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다들 서로 마지막을 준비했다. 서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웃으며 "다치지 말자"는 말을 전하고 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은 "다치지 마시라.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5일 오전 7시58분. 경찰이 본격적으로 농성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투입됐고 4일간의 재점거 농성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끝이 났다.

2197일의 싸움의 시간이 잠시 멈췄다.


하지만 콜트공동행동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싸움은 끝이 아니다.
 

   
▲ 지난 4일 저녁, 콜트악기 농성자들이 모두 모여 경찰 병력 투입전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197일의 시간 그리고 다시 시작

'7년 세월' 부당해고 투쟁문화·예술인 동참 이어져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지난 2007년 정리해고 이후 콜트악기 부평공장을 점거한 뒤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투쟁을 이어갔다.

이들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난 1996년부터 10년간 매년 170억의 순이익을 냈던 공장이 잠시 8억5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6년여간 점거하며 투쟁해오던 공장은 지난해 2월, 대법원이 경영악화로 인한 해고는 잘못됐다는 판결을 하자 콜트악기 사장인 박영호 사장은 결국 부평공장을 매각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새로운 땅소유주가 대집행을 시도했지만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 콜트악기 노동자들에 의해 무산됐다.

그들의 투쟁장소였던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악기 부평공장에는 인천문화연대 작가들이 속속 찾아와 작품활동을 통해 연대활동을 이어갔다.

콜트악기 농성장에서는 뜻밖의 만남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청년유니온 활동가들과 전국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다큐멘터리 감독, 가톨릭 신부 등 십수년간 기타를 만들어 온 노동자들이 다시금 일터로 돌아가길 바라며 함께 푼돈을 모아 투쟁자금으로 전달했다. 이렇듯 콜트악기 부평공장은 사람들의 문화공간이자 술집이자 누군가의 집이었다.

그 공장이 지난 1일 인천지법의 대집행으로 인해 한 순간에 빼앗겨 버린 셈이다.

사실 인천지역 시민연대모임인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공동행동'(이하 콜트공동행동)을 비롯한 사람들 모두 다시금 법원의 대집행을 할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명절을 앞두고 벌어질 줄은 몰랐다.

콜트공동행동을 비롯한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5일 오후 2시 인천경찰청 정문 앞에서 경찰의 강제 연행을 비판하는 기자회견과 함께 문화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다시 싸움을 이어갈 생각이다.

/글·사진 김상우 기자 theexodu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