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의 시대 2. 중국의 대운하 - 경항 운하
   
▲ 중국 상해 인근의 주가각. 중국의 베니스라 불리는 지역이다. 지역 대부분이 수로로 연결돼 있다.
     
 


수·원시대 확장공사로 틀 다져 남북 교류·수운 교통의 중심지

대운하 주변 중요 도시·촌락 형성 항저우 전통 깃든 회랑도시 '각광'



대운하라고 불리워지는 경항운하(京抗運河)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운하다. 북쪽 끝은 베이징시이고 남쪽 끝은 절강성 항저우시로 총길이가 1782㎞에 이른다. 경항운하는 베이징·톈진·허베이·산둥·장쑤·저장 등 6개 성과 시를 흘러 지나며 해하·황하·장강·회하·전당강 등 5개 수계를 관통해 남북 교통운수에서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 주가각 모습.

▲춘추시대 건설

경항운하는 많은 하천과 호소를 이용해 수로를 건설한 것이다.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양저우 부근에서 강회의 수로를 관통시킨 것이 최초의 운하로 추정된다.

그 후 이를 토대로 남북을 부단히 연장했다. 수나라와 원나라때에는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확장공사에 의해 오늘날의 경항운하의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졌다.

특히 전국적인 남북 유통망으로 기능한 것은 베이징이 전국의 수도로 정착된 원대부터다.

이후 대운하는 명·청시대까지 경제적 중심지였던 강남지역과 정치적 중심지였던 베이징을 이어주는 남북 물자교류의 동맥이자 주요한 수운 교통로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더구나 중국의 주요 하천 대부분이 동서방향을 연결하고 있고 명·청시대 해금 정책이 강고하게 유지됨에 따라 남북 방향으로의 수로 유통은 사실상 대운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대운하는 늘상 운송을 조운선 외에도 남북을 왕래하는 관료들의 선박 및 각지에서 몰려드는 상인들의 선박으로 가득차기 마련이다.

대운하는 총연장 1782㎞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수로이지만 끊임없이 연결된 하류라기 보다는 대략 7개 구간으로 나눌 수 있는 중·소규모의 운하의 연결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남쪽의 항저우로부터 계산할 경우 항저우와 전장을 잇는 강남운하, 회음에서 양저우까지 이운하, 회음에서 대아장까지 중운하, 대아장에서 임청까지 노운하, 임청에서 톈진까지 남운하, 톈진에서 통현까지 북운하, 그리고 통현에서 베이징까지 통혜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강남운하는 항저우를 비롯해 쑤저우, 우시, 창저우, 전장까지는 이른 바 수향으로 불리는 강남지역을 관통하는 운하로 대운하의 최남단이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강남의 도시와 향촌을 연결하는 물류의 동맥이었다. 이처럼 강남지역에서 수운유통이 활발하게 진행되다 보니 명 중기 이후로는 운하로의 운행 선박의 과다로 인한 지체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강남운하의 북단인 전장을 통과한 선박은 양쯔강을 도강한 뒤 진양운하에 진입하게 된다. 양쯔강의 폭은 20여리 약 11㎞에 달하고 풍랑이 거칠기 때문에 왕래하는 선박은 강남에 위치한 전장이나 강북에 위치한 고주에 정박하면서 선박을 교체하거나 만조가 될 때를 기다리곤 했다.

양쯔강을 건너자마자 만나는 이 운하의 남단은 고주인데 이곳에는 강남운하에서 올라온 선박뿐 아니라 양쯔강을 따라 내려온 선박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청단포를 건너 북상하게 되면 일련의 호백지역과 인접해 있어 치수에 어려움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 구간은 황하와 연결돼 있어 계속되는 토사의 침전 및 범람으로 인해 운하의 개·보수가 끊이지 않았다.

노운하는 1289년 안면산에서 임청까지 160㎞를 이으면서 처음 개통됐다. 당시 문하의 물을 끌어와 31개의 갑문을 설치해 수량을 조절했고 이 운하 개통을 통해 항저우와 베이징이 직통으로 이어졌다. 노운하를 거쳐 톈진까지 연결된 영제거를 거쳐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북운하, 통혜하가 연결된다.

통혜하는 원대 1293년 통주와 베이징성 입구까지 30㎞를 일컫는다.

이처럼 7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 대운하에는 운하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설치했던 각종 수리시설이 포함돼 있었다. 시설물은 인공운하의 수량을 너무 많거나 너무 적지 않도록 유지함으로써 조운선을 비롯한 선박이 원활하게 베이징을 왕래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 주가각에 위치한 주택.

▲운하 따라 도시 형성

대운하를 따라 대도시뿐 아니라 수많은 중요 도시와 촌락이 형성되고 발전됐다.

대표적인 운하도시는 바로 항저우다. 항저우는 대운하의 남단 종착지이자 남송의 전통을 지니고 있던 도시로서 원대에도 크게 각광을 받았다.

마르코 폴로는 견문록에서 항저우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최고의 도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곳의 거리와 운하들은 매우 넓고 크다. 시내 어느 곳에서나 뭍으로 혹은 수로를 통해 다닐 수 있으며 거리와 운하는 넓고 커서 배가 손쉽게 다닐 수 있다. 1만2000개의 돌다리가 있고 다리 아래로 배들이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동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쑤저우는 도시 전체를 운하가 감싸고 있으며 장강, 태호 등으로부터 흐르는 수로와 도시 내의 수백갈래의 수로가 서로 연결돼 흐르는 운하의 회랑도시라는 이미지를 띠고 있다.

운하와 더불어 발전한 이곳 정원들은 창량정 등을 비롯해 200여 가구에 이를 정도다.

정원은 원대의 사자림, 명대의 졸정원과 유원이라는 강남의 원림작품의 계보를 낳았다.

여행객들은 운하를 타고 시내를 감상하거나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해 멋스럽고 운치 있는 풍경과 길가에 흐르는 수로·운하, 주택과 자연과의 조화를 볼 수 있다. 쑤저우시를 관통하는 강남운하의 수로는 정치 중심인 장안을 정점으로 낙양을 중추로 해 동남과 동북방향으로 뻗어 완전한 체계를 이룬 한 갈래의 대운하로도 손색이 없다.

풍부한 남쪽의 물자를 수로로 통해 베이징 등 북쪽으로 옮겼는데 물류가 가장 많은 경제적 통로였고 국가의 통일을 강화하고 남북 경제문화 교류를 촉진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가 부여됐다.

화이안은 조운로의 중요한 거점이다. 화이안은 항하, 회하, 대운하가 서로 합류하는 시점으로 명 중기 임청의 위상은 가장 선진적인 도시였던 쑤저우나 항저우보다는 못하지만 산둥에서는 중계무역의 중심지로 이름이 높았다.

현재 경항대운하는 1400㎞의 구간을 물류수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구간의 복원과 대공사가 현재도 진행중이다.

/글·사진=김칭우기자 chingw@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