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티토'사망 후 연방국간'인종학살'자행
'피의 과거'벗어나 EU가입 등 경제발전 총력
   
▲ 세르비아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곳'크네즈 미하일로바'거리다. 한국의 명동과 같은 패션의 중심지인 셈이다. 오래된 카페에서 벌이는 악단의 공연 모습.


5.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처음엔 민족주의 때문에 다음에는 종교 때문에 다음은 내 땅을 되찾겠다고, 나중에는 아무도 이유를 모른 채 그냥 싸웠다". 민족과 종교, 영토 때문에 수많은 전쟁을 벌인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찾은 지난여름 도시 전체에는 음산한 안개가 자욱했다.

지도자의 욕심과 잘못된 판단으로 전쟁에 내몰렸던 세르비아 국민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도시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세르비아 국민들은 지금도 묻고 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천 년의 역사를 지닌 베오그라드 도심 중심에 위치한 옛 성곽도시인 칼레메그단에 올랐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최근까지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던 곳이다.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만나는 이곳의 풍경은 여느 다른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수천년 동안 전쟁으로 파괴됐다 다시 태어난 하얀 도시 베오그라드는 그렇게 아픔을 간직한 채 현재를 살고 있다.

이곳을 둘러보면 베오그라드의 전쟁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고성 입구에 프랑스식 정원이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승전국이 된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프랑스는 혈맹이나 다름없다. 정원 한 가운데 서 있는 조형물 뒤편에는 키릴문제로 양국 간의 우호관계가 그대로 적혀있다.
 

   
▲ ▶1998년 당시 나토군의 폭격 받은 그대로 남아있는 옛 군사령부 건물.


"프랑스가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프랑스를 사랑합니다."

승전국의 위치는 대단했다. 인근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통합해 유고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강대국간 전쟁 틈에 끼어 나라 곳곳이 전쟁터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때 바로 옛 유고연방의 영웅 티토가 등장한다. 파르티잔(빨치산) 활동을 벌이며 독일군에 맞서 독립을 이뤄낸 티토의 등장은 세르비아의 운영을 바꿔 놓았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국을 합쳐 유고슬라비아 연방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이름 그대로 남슬라브 민족의 연방국가가 세워진 것이다.

유고 연방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제3세계 비동맹국가의 맹주였다. 소련편도 미국편도 아닌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 성격을 띠면서 유고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뤄낸다.
 

   
▲ 영웅이자 성인인'사바'를 기리기 위해 100년넘게 공사가 진행중인 사바성당.


1960년대에 이미 미국과 무비자 협정을 맺을 정도다. 당시 세계 4대 군수물자 수출국가이며 전투기 제작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티토와 북한의 김일성이 사실상 의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1980년대 들어서야 겨우 국교수립이 가능했다.

티토 사망 이후 유고는 내전상황으로 치닫는다.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최초로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연방의 맹주역할을 했던 세르비아 중앙군의 공격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6개 연방국가가 민족과 종교, 영토를 두고 서로가 서로를 학살하는 내전이 벌어졌다. 1993년 데이튼 협정이 맺어지고서야 학살은 일단 멈출 수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다. 그는 처음에는 데이튼 협정을 맺으며 민족주의를 포기한다고 선언해 내전종식에 일조했지만 서방세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998년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를 무참히 학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학살자로 악명을 떨쳤다.
 

   
▲ 칼레메그단에서 바라본 베오그라드 시내의 모습. 이 도시는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만나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한 곳이다.


결국 나토는 세르비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벌였다.

지금도 당시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다보면 유고연방시절 내무부와 국방부, 군사령부 건물의 폭격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무차별 폭격이 아니라 스마트 폭탄을 이용해 핵심시설만 폭파시킨 것이다. 그는 인종 학살 혐의로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넘겨져 2006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현지에서 방영된 방송화면을 보면 그의 유해가 세르비아로 돌아올 때 수많은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서방국에서는 제2의 히틀러라고 불리는 학살자로 낙인찍혔지만 자신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셈이다.
 

   
▲ ▲ 칼레메그단 성곽 입구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동맹국인 프랑스식 정원이 조성돼 있다.


올해 치룬 총선에서 밀로셰비치 지지 세력이 다시 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학살자로 기억할 것이다. 지도자 한명의 잘못된 선택이 국가를 파탄으로 내몰 수 있는지를 세르비아가 증명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국가는 그렇게 어두운 이미지를 뒤로한 채 점차 잊혀 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세르비아가 변하고 있다.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지워가며 EU가입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이다.

지난여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세르비아를 방문했다.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암울한 과거를 지우고 새롭게 세계인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반 총장 영접은 그 어느 나라의 국가원수들의 방문 때보다 융숭했다.

경호도 치열했다. 반 총장이 지나는 다리의 안전 확보를 위해 경찰이 다 깔리고 잠수부까지 동원해 물속까지 철통경호에 나섰다.

연일 TV에서는 반 총장의 동정을 메인뉴스로 다룰 정도였다.
세르비아의 이 같은 노력은 점차 그 빛을 보고 있다.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세르비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밀로세비치가 아닌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다.

스물 네 살 스포츠맨 한 사람이 부정적이었던 조국의 이미지를 단숨에 호의적으로 바꾼 것은 세르비아에서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전범국이라는 낙인에 시달려 왔던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조코비치의 등장은 사막에 내린 단비와 같다.

세르비아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다. 한국의 명동과 같은 패션의 중심지인 셈이다.

많은 액세서리 가게가 있고 예술의 거리로 통하면서 오늘날 활기찬 세르비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전 패션과 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종교를 통한 변화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세르비아 국민들의 종교적 신념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사바성당이다. 110년 이상 짓고 있는 발칸지역 최대 성당으로 61m 높이의 수호동상이 인상적이다.
 

   
▲ ▲ 칼레메그단에는 내전때 사용했던 각종 무기가 전시돼 있다.


사바는 9~10세기에 살았던 왕으로 세르비아 정교회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오스만투르크가 세르비아를 점령하고 정교회를 포기시키기 위해 사바 성인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불태웠지만 국민들은 그의 불탄 시신을 보관했다가 이곳 사바성당에 안치했다.

세르비아에서는 독립영웅이자 종교적으로는 성인으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세르비아 정부는 바로 사바를 통해 독립과 종교, 개혁의 바람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기 위해 일체의 협찬을 거부한 채 시민들의 기부금만 받아 성당을 건립하면서 지금까지 100년 넘게 공사가 계속하고 있다.

차 내전의 상처를 딛고 EU가입 등 경제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세르비아. 하지만 민족과 종교를 앞세우는 발칸 국가들 사이에 긴장감은 여전하다.

가해자인 세르비아는 이를 잊을 수 있지만 피해자인 이웃나라, 특히 보스니아와 코소보는 학살의 기억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세르비아 경제현황


외투유치·기반시설 확충 비일비재 세금탈루 '발목'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면서 세르비아와 한국과의 경제교류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여전히 국민들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잘 구분하지 못해 삼성이 어느 나라 기업인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KTX고속열차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경제발전에 놀라워하고 있다고 현지 교민은 전하고 있다.

이곳에 가장 큰 외국투자기업이 바로 2010년 이곳에 진출한 한국기업 유라코퍼레이션이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전선을 납품하는 하청업체인 이 기업은 세르비아에서 6000~70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한 외국회사 단일투자기업으로는 1등이다.

처음에는 한국대사관에서조차 콧방귀를 끼었다고 한다. 들어본 적이 없는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공장에서 5공장까지 건립하면서 수천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자 세르비아 대통령조차 건물 완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세계적인 기업인 베네통이 2000명, 파나소닉이 1400명 등을 고용한 것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 점차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고속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있는 세르비아지만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

특히 세금탈루와 이와 연관된 비대해진 지하경제는 세르비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페이퍼 상으로 1인당 GNP가 7300달러 수준이지만 지하경제의 발달로 실제 소득수준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여전히 옛 추억에 묶여 국민들은 여름이면 그리스로, 겨울이면 알프스 스키장으로 휴가를 떠나 베오그라드가 텅 빌 정도다.


▲ 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