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갑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장
   
 


▲'경기도 600년'이 갖는 의미는.
-2014년은 경기도가 현재와 같은 영역이 정해지고 경기도라는 행정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경기도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한국사 전개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기에 경기도 600년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다. 경기도 600년의 역사는 앞으로 새로운 600년을 창조하는 밑거름이 돼야 한다.
경기도 600년은 많은 역사문화 자원을 생산했다.

경기도 600년을 맞아 역사문화자원을 새롭게 발굴하고 이를 콘텐츠화해 경기도 미래 경제를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경기도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조선시대 경기도는 정치적으로 왕도인 한양을 지키는 최후 보류였다. 그래서 경기도에 수원 화성과 남한산성, 북한산성과 같은 큰 성곽이 모여 있다.

이들 성곽들은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경기도 정체성 그 자체이며 우리 역사가 가꾸어 나가야할 훌륭한 역사자원이다.

조선시대 경기도는 경제적으로 한양을 먹여 살리는 경제기반이었다. 동시에 경기도는 조선시대 경제의 중심지인 한양을 끼고 있었기에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고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했다. 한양과 경기도는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하면서 조선시대 경제를 이끌었다.

▲조선시대 학문과 사상의 흐름은.
-성리학은 조선 사회를 이끈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성리학의 양대 계보는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인데, 기호학파의 중심지가 경기도이며, 대표적인 학자가 파주의 율곡 이이다. 조선전기 성리학은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사회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후기에 들어 성리학이 한계에 부딪히자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학이 발생했다. 실학은 경기도에서 발생하고 발전하면서 꽃피웠다.

실학의 대가인 성호 이익 선생이 지금의 안산에 자리 잡고 학문을 연구했으며 다산 정약용은 지금의 남양주 마재마을에서 출생했고, 유배 생활을 끝낸 후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면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성리학 자체를 비판한 양명학도 경기도에서 발전했다. 특히 조선왕조 봉건사회를 그 기반에서 무너뜨릴 수 있는 서학이 발생한 곳도 경기도 광주 천진암과 여주 주어사이다. 세계 천주교 역사상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발생한 드문 사례가 경기도에서 있었다는데서 그 의미는 크다.

경기도는 다양한 사상을 꽃 피우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경기도 문화가 가지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분단시대 경기도가 가지는 위상은 무엇인가.
-경기도는 분단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지역이다. 특히 경기북부지역은 1960년대까지 남북대립의 현장이었다. 민간인통제구역과 군사보호구역이 설정되면서 주민들의 생활은 많은 제약을 받았으며, 경제발전도 더뎌지는 등 피해를 봤다.

남북관계가 긴장과 대립에서 대화와 화해 국면으로 가면서 경기도는 분단의 현장에서 남북교류의 현장이자 통일의 길목으로 바뀌었고, 경기도 북부 지역은 발전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긴장과 대립, 화해와 교류가 교차하기도 하고 병행하기도 했으나, 경기도는 분단의 현장에서 통일의 길목으로 전환하고 있다.

/글 이동화기자·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