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속내를 듣고 싶었다. 이규생 처장을 빼고 남영신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형>

스물다섯살 나이에 형을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형이 됐죠. 당시 대학가는 남녀가 선후배 관계에도 형이란 호칭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형이라 불렀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무엇보다 형(이규생)은 나에게 형(선배) 이상의 형(인생 멘토)이다. 형은 한길같은 나의 동반자죠. 형이 있어 행복합니다.


<스승>

하하(웃음), 말도 안됩니다. 제가 스승이라뇨. 오히려 형이 저를 이끌었죠. 남편(송영길)이 흔들릴 때마다 형의 조언이 컸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남편이 고시공부를 시작할 때 형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어려웠을 겁니다. 형은 정치적 동지 이전에 함께 살아가는 동지입니다.


<영신>

그런 질문 많이 받아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채영신과 같은 이름 때문이죠. 하지만 채영신이 농촌 계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라면 저는 그렇지 못해요. 대중을 통해 오히려 계몽을 받고 있는 입장이죠. 노동자를 상대로 근로기준법 등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요, 가르친 것보다 제가 배운게 더 많습니다.


<정치>

남편을 도와 활동하는 것에 만족해요. 제가 직접 정치에 나설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남편의 정치 인생을 위해 뒷받침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죠.

/배인성기자 isb@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