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은경(왼쪽) 교감이 자신이 후원하는 베로니카 디요에게 결연아동 사진이 담긴 카드를 꺼내보였지만 베로니카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이다. 하지만 황 교감의 선물 보따리에 베로니카는 금세 밝아졌다.


6.자립 의지의 원동력 '결연'

"잠보(안녕)!"

"무수리 싸나(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황은경(55) 서운중 교감과 탄자니아의 평범한 산골마을 소녀 베로니카 디요(5).

황 교감은 마치 늘상 봐온 아이였던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기쁨이 교차하는 몸놀림으로 베로니카를 꼬옥 감싸 안았다.

서재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짬 날 때마다 눈길을 보냈던 결연아동 소개카드 속 아이의 사진과 똑같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반면 요 며칠 새 몸살을 앓느라 정신이 먹먹한 베로니카는 할머니 같은 황 교감의 품이 어쩐지 어색하다.


눈치 빠른 황 교감이 가방 한가득 챙겨 간 한국 사탕을 꺼내 베로네카의 입에 물렸다.

오로지 베로니카를 상상하며 준비해 간 공책이며 연필이며 인형을 양손에 들려주고 화사한 티셔츠도 입혀줬다.

"아산테(감사합니다)…."
한동안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베로니카의 하얀 이가 드러나더니 이윽고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 결연아동과의 만남
지난 2월17일 오전 탄자니아 아루샤 지방 은다바시 지역의 한적한 산골에 자리잡은 베로니카의 초가는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을 구경 온 마을 사람들로 금세 북적이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6남매 중 넷째다.

엄마, 아빠를 비롯 쌍둥이 언니들과 한 살배기 남동생 등 여덟식구가 한 집에서 지낸다.

좋아하는 과목은 작문, 좋아하는 놀이는 인형놀이. 한국의 여느 아이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바닥면적이 채 10㎡에 불과한 초가는 여덟 명 가족이 한데 눕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초라한 둥지다.

가재도구나 옷가지라고 해봐야 몇 개 없다.

한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좁은 설거지 겸 조리공간은 땔감을 지펴 음식을 만드느라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 공간과 어지럽게 뒤섞인 채다.

황 교감은 지난 해 12월 교회에서 월드비전 홍보물을 보고 자청해 해외아동 후원자로 가입해 베로니카와 1대 1 결연을 맺었다.

수 년째 고아와 불우아동을 후원해 온 터였다.

부일중 교사 시절엔 정신지체3급 제자를 딸처럼 보살펴 왔는데 갑작기 고열로 쓰러진 뒤 병이 악화돼 지난 해 급성신부전증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가슴에 자식 같았던 딸을 묻은 그가 다시 희망을 발견한 것은 베로니카의 후원자로 결연을 맺으면서부터였다.
 

   
▲ 필기구는 물론 교과서조차 태부족하지만 은다바시 어린이들의 마음과 얼굴만은 그 누구보다 따스하고 해맑다. 모니터링 방문단 일행은 이들을 위한 학교 신·개축, 교육기자재 등 교육환경 개선 지원에 우선 힘을 모아야 한다는 솔루션 결론을 내렸다.


● 경제적 자립 나선 주민들
베로니카의 마을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 밀림 속을 헤집고 들어간 나이아바라 마을 내 묘목장.

주민 소득증대 사업의 일환으로 약 990㎡ 터에 마을주민 30가정이 참여해 묘목을 공동 경작하고 있다.

탄자니아 월드비전으로부터 비료, 펌프장, 플라스틱컵, 펌프장 등을 지원 받아 화초 등 각종 묘목 6천 그루로 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매년 6월 파종해 8월에 화분에 옮겨 심은 뒤 11월쯤 50㎞쯤 떨어져 있는 카라투 시내의 기업체와 학교 등에 조경용으로 내다 판다.

수익은 공동 분배 원칙.

지난 해 주민들은 묘목장 운영을 통해 가구당 660만 탄자니아 실링(TSh·한국 돈 약 6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주민 반 웰리레마(39) 씨는 "묘목장에서 나온 수익분배금으로 집을 고치고 소를 사고 아이들 학교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작목반장 식스베리 마사이 수스(58) 씨는 "올해 우리 마을 주민들은 5만 그루의 묘목을 재배해 2천만 탄자니아 실링의 수입을 올린다는 목표"라고 전했다.

은다바시 지역은 주민의 98%가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농축산 기술 부족, 농업에 부적합한 기후, 질 낮은 종자, 농축산물 판로처 부재 등으로 식량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탄자니아 월드비전이 펼치고 있는 지역개발 사업은 경제적·사회적 자립이 다급한 이곳 주민들에게 커다란 힘이 돼 주고 있다.

● 방문단의 솔루션 '후원과 결연'
다음 날 탄자니아 월드비전 은다바시 사업장 관계자들과 현장 모니터링을 벌인 한국 월드비전 방문단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은다바시 지역을 돕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즉석 솔류션 회의가 열렸다.

페트로 마캉게 은다바시 사업장 총괄책임자는 "한국인들이 머나먼 오지까지 직접 찾아와 현장을 둘러봐 준 것만도 우리에겐 큰 행운"이라며 "사명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지역개발 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맹영희 부원여중 교장은 "은다바시 지역 학교의 열악한 시설과 기자재부터 신속히 보강할 수 있도록 월드비전이 지원사업을 서둘러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은경 서운중 교감은 "우선 교과서 등 도서 보급 사업부터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희만 인천화전초교 교감은 "만약 20년 전 내가 이곳에 왔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인천에 돌아가면 은다바시의 실정을 널리 알리고 후원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손승도 산곡남중 교사는 "미래 동량인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내는 교육이 매우 중요한 만큼 열악한 학교를 신·개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희우 진산중 교장은 "은다바시 지역 발전을 위해선 제대로 된 식수 공급이 큰 과제"라며 "인천지역 모금 운동을 통해 식수 지원을 우선 추진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백경석 인천삼산초교 교사는 "식수원 개발의 경우 자연을 거스르기보단 지리적 특성에 걸맞는 식수 공급 체계를 구축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게 좋겠다"고 제시했다.

6·25전쟁 당시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위한 구호사업에서 비롯된 월드비전.

한국에서 출발한 월드비전은 지금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1억 명의 지구촌 이웃을 위한 구호·개발·옹호사업을 펼치는 국제구호개발단체로 성장했다.

도움만 받던 한국은 1991년 드디어 도움을 주는 나라로 역사적 전환도 이뤄냈다.

매달 3만 원씩 보내는 후원금은 긴급구호, 식량위기 지원, 에이즈 예방 및 치료 사업 등에 소중하게 쓰인다.

후원자가 보내는 정기 후원금은 아동에게 현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대신 가난한 지역의 마을과 지역사회가 근본적으로 체질을 개선해 지속적으로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사용된다.

개발 사업을 통해 주민역량을 강화하고 결연아동과 가족 모두 경제적·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준다.

교육기자재 보급, 학교시설 개선, 아동 학습능력 향상, 5살 미만 영유아 예방접종, 보건소 의약품 지원, 수인성 질병 예방을 위한 위생교육, 주민 소득증대사업 등에 전액 투입된다.

지역사회 전체의 큰 변화가 가능한 원천이 여기에 있다.

모든 후원금은 소득공제 혜택도 받는다.

한국 월드비전 홈페이지(www.worldvision.or.kr)나 전화(02-2078-7000)로 후원자 신청을 할 수 있다.

월드비전·인천시교육청·인천일보는 오는 6월까지 은다바시 아동과 인천지역 난치병 학생을 돕기 위한 사랑의 동전 모으기 운동을 벌인다.

/은다바시(탄자니아)=글·사진 윤관옥기자 okyun@itimes.co.kr


● 은다바시 지역 모니터링 방문단 일행(총 11명)

남기종(인천시교육청 학교정책과장·단장)
임희우(진산중 교장)
맹영희(부원여중 교장)
양희만(인천화전초교 교감)
황은경(서운중 교감)
손승도(산곡남중 교사)
백경석(인천삼산초교 교사)
김민숙(월드비전 인천지부장)
배민성(월드비전 인천지부 간사)
서지원(월드비전 온라인마케팅팀장)
윤관옥(인천일보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