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봉 회장은 …

박주봉(55) 대주중공업 회장은 드라마 같은 스토리의 인생 역정을 헤쳐온 인물이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 났던 국민학생 때 그는 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에 고향 전남을 떠나 상경했다.

학비를 마련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

처음 찾아간 곳은 동대문 평화시장이었다.

"옷감 실밥을 튿어주고, 재봉된 부분을 다리미질 해주는 일을 하는 보조를 '시다'라고 부르죠. 밤에 그 일을 하면 저녁밥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 있었어요. 낮엔 학교를 가고 밤엔 거기서 일을 하고 잤죠."

주말엔 이발소에서 손님 구두를 닦아주고 10~20원을 받았고, 10개 값에 제과점 빵 11개를 사 조금씩 이문을 붙여 팔다가 중학생 땐 아예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풀빵, 도넛, 떡볶이, 어묵 다 팔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일 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풀빵 반죽 만드는 일은 자신 있어요. 맛있게 잘 한다는 포장마차나 가게를 찾아가서 방법을 물어보기까지 했으니까요. 설마 나같은 애가 뭘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지 어른들이 의외로 별 생각 없이 방법을 알려주더군요. 밀가루랑 우유를 어떤 비율로 넣고 설탕을 뿌리는지까지 배우고 고민해서 풀빵을 팔아 학비를 벌었어요."

그 학비벌이가 너무 힘이 들어 그는 중거리 육상을 시작했다. 전국대회에서 3위권 내에 들면 학비를 면제해줬기 때문이다.

"운동한 지 일 년 만에 전국대회 1등을 했어요. 최고 실력자들이 등록을 못하거나 다른 사정으로 대회 참가를 못했던 거죠. 정말 운이 좋았어요."

지금도 조깅은 그가 머리 아플 때, 힘들 때마다 수시로 하는 운동이자 휴식의 아이템이다.

1987년 군 제대 후 곧바로 현대제철에서 철근을 자르며 몇달 모은 돈으로 그는 중고 8t 트럭을 장만했다.

그걸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오던 무연탄을 날랐다. 서울 영등포의 대성연탄, 이문동 동원연탄, 망우리 삼표연탄 등지를 그는 트럭을 몰고 들락거렸다.

"밤낮 없이, 정신 없이 일하다 보니 부리는 트럭이 1대에서 6대로 늘더군요. 개인사업자에겐 세금 감면 혜택이 별로 없어 법인을 설립하게 됐죠."

대주중공업의 모태인 대주개발이란 회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송영휘기자 ywsong200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