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 맞은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
   
▲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가 벽에 붙여놓은 미술문화비평지인<시각>지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시각>지는 스페이스 빔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간행물로 인천지역의 미술은 물론, 지역현안을 담론으로 하는 잡지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


양철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채 빨간벽돌로 지어진 건물벽에 몇 개의 포스터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1927년 지어진 건물이어서인지, 전시장이라기 보다는 창고에 가까웠다.

현재 스페이스 빔이 임대해 쓰고 있는 이 건물은 1927년부터 양조장이었던 곳이다. 인천을 대표하는 향토막걸리 '소성주'가 이곳에서 생산됐다.

위태로워 보이는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 2층 문을 열었다. 커다란 연탄난로 위로 물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주전자 주둥이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 지난 1월 19일 스페이스 빔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며 모인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서 오세요, 차 한잔 하시죠."

스페이스 빔 민운기(48) 대표가 난로 위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원두커피를 타 내밀었다. 커피향이 2층 공간에 은은하게 퍼졌다.

이 곳에선 지난달 19일 '스페이스 빔 창립 10주년 행사'가 진행됐다.100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선 스페이스 빔이 지난 10년 간 걸어온 길을 정리, 소개하고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벌써 10년이 됐네요. 지난 10년 간 무엇을 한 거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거 같기도 합니다. 그저 그 때 그 때 절실하고 필요한 일을 하다가 열돌을 맞은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 간의 성과가 무엇이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민 대표는 "10년을 맞아 스스로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이 좀 쑥스럽고 그냥 넘어가자니 뭔가 아쉽고 해서 정확히 10년이 되던 1월19일 스페이스 빔 채우는 밤 행사를 치렀다"며 "이 날을 계기로 자료정리도 하고 공간 재배치도 하면서 앞으로의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겸손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스페이스 빔이 추구해온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술 공간의 운영과 활동의 새로운 사례를 만들고자 의도했습니다. 그 속에서 '지역성'을 가장 중시해 왔습니다. 중앙집중적인 문화구조 속에서 열악하고 왜곡된 지역의 문화적 환경을 개선하고 활성화 시켜보자는 것이었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삶 내지는 사회와 분리된 예술 또는 미술을 다시 복원시키는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얘기인즉슨, 현재의 미술문화인 규격화한 전시장에서 작가들의 그림을 걸어놓는 미술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과연 시민들의 삶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가 회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저는 소수 전문가의 성과를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겠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반 개개인들이 문화적 활동의 주체가 되는 미술이야말로 진정한 미술이라고 봅니다."

민 대표는 말하자면 전통적인 미술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의 확산으로 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하는 등 디지털시대이다. 그런데 미술계에서는 여전히 아날로그시대의 빛바랜 유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을 전공한 그지만 지역문화운동에 더 적극적인 것은 이런 그의 신념 때문이다. 배다리산업도로 개설 반대 등 민 대표는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지역에 대해 언제나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구월동에 있던 사무실을 2007년 배다리지역으로 옮긴 것은 바로 운동의 연장이었다.

"2007년 1월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공미술프로젝트인 '도시유목2'란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인천의 상징적인 장소나 지역을 정해 몽골텐트를 치고 이틀에서 닷새씩 머무는 프로그램이었지요. 세번 째 탐사로 배다리에 왔는데 마을 한 복판이 갈라진 채 도로를 개설하고 있던 겁니다. 당시엔 배다리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지만 멀쩡한 동네를 효율성의 논리로 두 동강 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지요."

'경제가 중요하다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그는 그 때 자신을 비롯한 예술은 무엇이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래서 일단 산업도로 막는 일에 나서기로 했고 그 때 배다리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이전 뒤 배다리 문화축전, 배다리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등 배다리의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련의 활동을 펼친 결과 배다리산업도로 개설은 무산됐다. 관의 일방적인 결정을 정지시킨 것이다.

"요코하마에 간 적이 있는데요. 그 곳에선 민·관·전문가는 물론 대학과 지역사회가 긴밀한 연계를 갖고 저마다의 경험과 지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인천시도 시혜의 관점에서 탈피해 선명한 철학이나 방향성을 갖고 문화행정을 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지역사회 현안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한편, 미술을 특정양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이스 빔은 미술에 대한 관념적·제도적 사고와 형태를 넘어서 다양한 가능성과 역할을 찾아갈 것입니다. 이런 노력 가운데 하나가 올 봄부터 시도하는 배다리도시학교 운영입니다. 인천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