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가습기 살균제 … 대책은
   
▲ 보건복지부에서 수거 명령한 가습기 살균제 6종.


가습기. 건조한 실내 공기가 코나 피부를 자극하는 것을 막아 코피, 피부건조증 같은 증상을 예방하게 하는 기계다.

그런데 이 가습기가 최근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폐질환 사망사고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확히 말하면 가습기 살균제가 사고의 주범이다.

가습기는 습기가 많은 만큼 곰팡이나 진드기, 세균이 쉽게 번식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력한 화학물질이 담긴 살균제로 균 증식을 막아왔다. 그런데 이 살균제가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간 것이다.


지난 1월 감기증세로 입원한 생후 27개월 아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원 41일 만에 사망했다. 4·5월엔 출산 전후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연이어 입원, 이 가운데 4명이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증상을 보이며 사망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2004년부터 올해까지 서울의 한 의료기관에 입원한 원인 미상 폐손상 환자 18명을 환자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지난 8월31일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 질환의 원인으로 의심된다는 중간 조사가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이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폐손상 질환에 걸릴 위험도가 47.3배 높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실험용 쥐 80마리를 4주간 실험해 본 결과 가습기 살균제를 들이마시게 한 쥐의 폐가 딱딱하게 굳는 등 그동안 원인미상의 폐손상 환자들이 보였던 병리학적 양상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폐질환에 걸린 환자들은 매년 4개월여 가습기를 사용하면서 한 달에 1병 정도의 살균제를 이용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 9월20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1차 피해사례를 발표했다. 공개된 환자는 영·유아 6명과 산모 2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생후 15~44개월 사이 영유아 5명이 사망했고 1명은 폐질환 환자가 됐다. 센터는 이어 지난 1일 2차 피해사례 20건, 9일 33건이 추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가습기 살균제로 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사례는 공개된 것만 모두 90건이 넘는다. 이 중 31%에 달하는 28건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급성호흡곤란증후군, 간질성 폐질환 등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60%를 차지했다.

특히 생후 36개월 미만의 영·유아, 소아의 사망이 21건으로 전체 사망의 75%에 달해 아이들이 살균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 정상인의 폐(왼쪽)와 폐손상 환자의 폐 조직. /연합뉴스

이후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확인됐다며 실험을 통해 문제가 드러난 제품 2종을 수거한다고 발표했다.

문제 제품과 같은 성분이 함유된 3종과 유사 성분이 들어간 1종 등 모두 6종의 제품을 한 달 안에 수거할 것을 해당 업체에 명령했다. 이번 사건에서 유해성이 드러난 성분은 PHMG와 PGH다.

또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의약외품 범위 지정' 고시 개정안을 오는 28일까지 행정예고 한다. 그동안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돼 독성에 대한 규제가 없던 살균제가 의약외품으로 지정되면 제품 허가단계부터 식품의약품안정청의 관리를 받는다.

한편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와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단체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상대로 살균제 피해에 대한 집단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간다며 참가할 소비자를 모집 중이다.

/심영주기자 yjshim@itimes.co.kr

 

   
 


■문제성분은 …

폐손상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 PHMG(polyhexamethylene guanidine)와 PGH(Oligo(2-(2-ethoxy)ethoxyethyl guanidine chloride)는 살균제나 부패방지제 등으로 흔히 사용되는 구아디닌(guanidine) 계열의 화학물질이다.

다른 살균제에 비해 독성이 10분의 1정도로 적고 살균력이 뛰어난데다 물에 잘 녹아 가습기 살균제뿐 아니라 물티슈, 부직포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