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4부. 꽃은, 죽은 나무들의 마지막 폭죽놀이
40. 4부. 꽃은, 죽은 나무들의 마지막 폭죽놀이
  • 김진국
  • 승인 2011.06.23 00:00
  • 수정 1970.0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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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어낸 이야기지만 사람들 속에 매일같이 일어나는 이야기지. 처음부터 내 그럴 줄 알았지. 알고 있었다고. 겨우 정신차리고 해거름에 나와 무엇 좀 먹으려는데 입맛 다 달아났겠다. 이놈아, 너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 하하하. TV 연속극 보시며 두런두런하시는 우리 엄마처럼 내가 왜 이럴까? 켄트지 210X290㎜. 연필, 수채, 김충순 그림 2011.

박부장이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부장이 살해당했다. 새벽 1시 코르도바 거리의 뒷골목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경찰은 마약꾼들과 범죄자들로 득실대는 밤늦은 시간, 현금을 노린 강도의 우발적인 살인으로 보고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박부장 살해 사건은 현지 한인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박부장은 왜 새벽 1시에 코르도바에 갔을까? 초이와 함께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갔던 박부장은 왜 그 시간 코르도바 거리에 있었을까? 조사 결과, 그는 한국에서 온 본사의 감사팀 접대를 위해 급하게 그 전날 몬테비데오에서 귀국했고 감사팀과 함께 코르도바 거리에 있는 탱고쇼 공연 극장에 갔다는 것이다. 원래 본사 감사팀은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 지부를 거쳐 귀국하게 되어 있었는데 일정을 수정해서 아르헨티나에 들른다고 하루 전날 통보가 왔고, 박부장은 초이와의 일정을 앞당겨 급하게 귀국했다는 것이다.

탱고쇼 공연이 끝난 후 근처에 있는 바에서 감사팀과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그가 살해된 것은 감사팀을 택시에 태워 먼저 보낸 뒤였다. 아마 그는 혼자 술을 한 잔 더 하려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집으로 귀가하려다가 취객과 시비가 붙었는지, 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근처의 뒷골목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박부장의 몸에 찔린 칼의 흔적으로 봐서 우발적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만약 원한에 의한 살해였거나 프로페셔널한 살인이었다면 칼의 위치가 심장이나 경동맥 등 치명적인 곳에 집중되어야 하고, 칼자국의 깊이가 단 몇 번 만으로도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야 하는데, 10여군데가 넘게 찔린 칼의 위치와 방향으로 봐서 아마추어들의 우발적 살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박부장 회사 감사팀들이 먼저 조사를 받았고 이어서 박부장과 함께 살고 있었던 초이의 조사도 진행되었다. 초이는 경찰에 출두해서 당일 행적에 대한 진술을 했다. 초이는 그 시간, 코르도바와는 많이 떨어져 있는 사르미엔토 거리의 탱고바 '뽀르떼뇨인바일라르'에서 탱고를 추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새벽 3시 무렵 '뽀르떼뇨인바일라르'가 문닫을 때까지 그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는 사실은 탱고바의 매니저와 웨이터 등에게 확인되었다. 그 이후 초이의 행적에 대해서는 다다와 라우라가 확인을 해주었다. 초이는 친구 집에 놀러가서 아침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고 진술을 했고 경찰은 다다와 라우라에게 그것을 확인했다.

초이의 알리바이가 확인되면서 박부장 죽음과 관련해서 초이는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서울에 있는 박부장의 유족들에게 연락이 가서 박부장 사망 사흘 후, 박부장의 여동생과 매형과 딸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본사 감사팀들은 감사 대신 박부장 사망을 뒤처리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현지 언론들은 박부장 가족들의 도착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그러나 언론들의 관심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시들해졌다. 이런 사건은 수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몇몇 신문과 방송에서 박부장과 동거하고 있던 한국 여인 초이에 대한 기사가 잠깐 언급이 되었을 뿐이다.

가르시아와 라우라, 그리고 다다가 받은 충격은 컸다. 그들은 보름 넘게 밀롱가에 가지 않고 매일 만나서 술을 마셨다. 초이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박부장과 함께 살던 집에서 초이는 나왔다고 했다. 박부장 유족들이 도착해서 그 집에 있기 때문이었다. 박부장의 유해는 경찰 부검을 거쳐 화장되었고, 가족들은 그 유해를 안고 서울로 돌아갔다. 귀국하기 전 유족들은 대사관을 찾아가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고, 주아르헨티나 한국 대사관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경찰에게 사건의 조속한 해결과 범인의 빠른 검거를 촉구했다.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에서도 철저한 조사와 빠른 범인 검거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지 보름이 지났다. 다다는 그동안 그날 밤의 행적을 머리 속에서 수없이 되감았다 다시 플레이 해보곤 했다. 왜 그날, 새벽 3시까지 탱고를 춘 후 초이는 자신의 집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다다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다음날이었다. 다다의 집을 알고 있는 것은 가르시아 뿐이었다. 다다는 가르시아에게, 언제 자신의 집을 초이에게 알려주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가르시아는 공항에서 다다를 픽업해서 프렌치와 아우스트리아 거리가 만나는 곳에 있는 다다의 새로운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리고 다다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그는 다다의 집에서 나와 시내에서 초이를 만났다고 했다. 원래 그 시간에 초이와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다가 집을 얻은 주소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초이 역시 다다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왜 새벽 시간에 초이가 다다의 집에 찾아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다다가 라우라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도 그녀는 화를 내거나 돌아가지 않고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다다는 초이의 진짜 마음을 알고 싶었다. 분명히 그녀는 다다가 라우라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열지 않고 오직 섹스만 했다. 그것도 라우라와 다다가 섹스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질투의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않았다.

초이는 라우라와는 다른 입장이었을 것이다. 라우라는 이미 다다와 초이가 육체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초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다다는 아직까지 자신의 남자였다. 그녀는 다다가 아직 라우라가 섹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날 밤 다다는 라우라와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그들의 첫 섹스가 두 사람만의 은밀하고 아름다우며 충만한 기쁨과 희열로 가득찬 섹스가 되지 않고, 왜 초이까지 끼어들어서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되게 초이는 유도했을까?

다다는 그것이 어떤 유도에 의한 것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경찰에게 그들은 다다의 집에서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고 진술을 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다는 몇 달 만에 한국에서 다시 아르헨티나에 온 것이었고,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다다를 만나 반가워서 그들이 함께 다다의 집에서 술을 마신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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