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탈주민이 본 연평도 포격
   
▲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옹진군 연평도에 북한이 발사한 포탄 수십발이 떨어져 곳곳이 불타고 있다. 놀라 달려온 북한이탈주민이 연평도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연평도 피격과 북방한계선 앞 실사격 훈련, 7년 만의 애기봉 트리 점등…. 지난해 11월, 북한의 포격으로 시작된 한반도 긴장국면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때 아닌 전쟁위기에 휩싸인 요즘, 생명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인천의 북한이탈주민은 1천600명이 넘는다.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서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북한이탈주민들은 전체적으로 북한의 이번 포격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한국정부에 좀 더 신중한 대처를 주문했다.



국제적 선전전, 치밀하게 대처를

▲ 최선아(39·가명)씨. 2005년 1월 죽음의 문턱을 넘어 한국에 왔다. 인천 연수구에서 삶의 터전을 일군지 어느덧 5년이다.

최씨는 연평도 포격을 TV로 지켜봤다 했다. "그저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밖에 무슨 말을 하겠나요." 복잡한 심경을 감출 길 없다는 표정이다.

민간인 희생도 희생이지만 최씨에겐 TV화면 너머로 발버둥 치는 북한의 현실이 먼저 떠올랐다.

북한에선 여전히 두 집 당 한 집 꼴로 끼니를 굶는다 했다. 최씨는 "그런데도 북한이 이처럼 때 아닌 무력도발을 했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

북한이 왜 이런 무리수를 뒀는지 최씨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국제사회의 이목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결국 어려운 경제사정을 벗어나기 위해 무력도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무고한 희생을 내면서까지 말이에요. 한마디로 치고 빠지기지요"

최씨는 탈북 때 북에 두고온 아들 한모(8)군 생각에 더 착찹하다 했다.

"아마 배를 곯고 있을 거에요. 북에 있을 때에도 밥 한끼 제대로 못해줬는데…" 아들을 남겨두고 온 것도 가슴 칠 일인데 연평도 사태가 터지니 회한이 더 깊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씨는 "북한은 발악하고 있다. 지나친 강경대응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렇게 해서 바뀔 집단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좀 더 치밀하면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했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 임정은(58·가명)씨는 인천 부평에 3년째 살고 있다.

임씨는 "연평도 포격으로 북한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어 "북한은 결국 나중에 한국을 이겼다며 방송 등을 통해 승리를 미화시킬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 인민들은 최근 사태에 대해 심한 불안을 느낄 것이다. 언젠간 북한 내부의 결속이 무너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비판여론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전혀 득이 없는 도발"이라 말했다.

북한에 대한 임씨의 태도는 결연했다. 연평도 포격 당시 한국 군의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했다.

임씨는 "북한의 포격에 왜 대응사격이 늦어졌는지, 그 규모가 더 컸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전체적인 대응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임씨는 "북한은 오랜 세월 변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틈만 나면 남한을 공격하고 위협하는 나라다. 한국 정부가 강력히 맞대응해가야 한다는 얘기"라고 했다.

아울러 "지금처럼 대응해서는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도발과 모험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북한이 더 나서지 못하도록 한국이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선아씨의 생각과는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사격훈련 계획대로 진행 적절했다

▲ 연평도 피격 이후, 긴장 속에 한국군의 사격 훈련을 지켜본 김학철(63·가명)씨는 30여년 전 과거를 회상했다.

북에 있을 당시 군에 다녀온 얘기다. 북한에선 열 일곱, 열 여덟살이면 군대에 가 10년 동안 군복무를 한다고 했다.

그는 "워낙 옛날 일이라 기억도 흐려졌고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크게 달라졌겠지만 북한군의 화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한 정권은 백성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무기를 만들고 사들인다. 경제사정은 최악이지만 군사력은 결코 축소된 적이 없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연평도 포격에 대해 김씨는 "하나의 심리전일 뿐"이라고 격하시켰다.

"포격 한참 후 한국군의 사격훈련이 다시 시작됐을 때 북한의 추가도발이 없을 것이라 나름대로 확신이 섰다. 한국군이 전투기와 함대를 배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둔 덕이다. 북한은 이런 상황일 때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한국군의 지난 달 사격훈련을 높이 평가했다.

"한 두 번 미루긴 했지만 사격훈련을 계획대로 진행한 건 잘한 일"이라며 "우리가 북한의 눈치를 본다면 그거야말로 북한이 노리는 바다. 휘둘려서는 안된다.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해온 훈련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자극 삼가야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해발 154m고지 애기봉 트리에 다시 불이 켜졌다.

해병대가 해마다 해오던 점등식을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폐지한지 7년 만이다.

그 전까지 이 곳에선 성탄절을 앞두고 트리에 불이 켜지고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며 북한 주민에게 한국의 풍경을 보여줘왔다.

한국에 온지 8년째라는 한정화(45·가명)씨는 북한에서 딱 한 번 애기봉 트리를 봤다고 했다.

"2001년 성탄절 때 희미하게 빛나는 애기봉 트리를 처음 봤죠. 북한에선 볼 수 없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죠.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그 뒤 남편과 상의해 남한에 가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남편과 함께 중국 등지에서 1년 반을 헤맨 끝에 겨우 한국 땅을 밟았다.

한씨는 "막상 한국에 와서는 애기봉 트리 점등이 폐지돼 가까이선 그 광경을 볼 수 없었지요. 그런데 갑작스런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애기봉 트리에 다시 불이 들어온거죠"라고 말했다.

한씨는 애기봉 트리가 최근 몇 년 새 한반도 긴장의 가장 큰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애기봉 트리 점등은 괜히 일어난 게 아닙니다. 그만큼 연평도 포격사태로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된 거에요. 과거 긴장이 완화됐을 때 불이 꺼진 것처럼요."

아울러 한국 정부에 이번 연평도 사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한씨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물론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북한을 자극해선 안된다. 강경책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현미기자 ssenmi@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