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의 역사와 문화
   
▲ 영화'빠삐용'에서 주인공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던 절벽과 비슷한'빠삐용 바위'는 자연이 아름다운 연평도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다. 파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일몰풍경은 자유와 함께 낭만이라는 또 다른 선물을 준다. /사진제공=옹진군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섬은 바로 연평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썩 유쾌하지는 않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갑작스런 무력도발의 피해지였기 때문이다. 인구1천700여명의 작은 섬 연평도는 '연평도 포격'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언론에도 수차례 거론됐다.

이미 1999년과 2002년에도 이른바 '연평도해전'이 벌어지며 남북갈등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이 섬은 그러나, 우리나라 3대 어장 중 하나로 조기철에는 1천500척이 넘는 어선이 모여들었던 풍요의 땅이었다.

연평도가 하루 빨리 복구돼 평화가 찾아오길 온 국민이 바라는 이 때, 연평도는 과연 어떤 섬인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연평도는

북서쪽 북방한계선에 근접한 이 섬은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구성돼 있다. 1938년까지는 황해도 벽성군 지역에 속했지만 해방 후인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행정 편입됐다. 이후 1995년 강화군과 함께 인천광역시의 관할지역으로 분류됐다. 보통 대연평도를 칭하는 연평도는 국내 대표적인 조기어장이었으나 지금은 꽃게 어장이 활성화 돼 있는 군사상·어업상 중요한 곳이다.

유명한 관광지 구리동 해변에서는 북한의 옹진반도가 바로 보인다. 잔잔한 바다는 마치 그곳을 향해 기차로 달리는 것 같이 '평평'하게 뻗어있다. 연평도(延坪島)라는 이름의 어원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조선시대다. 임경업 장군이 조기를 발견한 후 어부들이 모여들어 정착했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있는 충민사에 신사를 지으려다가 실패했던 일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6.25때 참전해 용감하게 숨진 무명용사 6인의 위령탑도 세워져 주민들은 해마다 그들을 추모하고, 인천의 대표적 민요 '니나나타령'이 구전되며 매년 풍어제를 지내고 있기도 하다.


볼만한 곳

뱃길로 3시간여 걸리는 연평도는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섬이다. 여느 관광지처럼 화려하거나 규모가 큰 여행지는 아니지만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자연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뺏기 충분하다.

 

   
▲ 연평도가 조기어장의 황금기를 이뤘던 1960년대 말까지 바다를 환히 비추던 등대는 이제 그 기능을 멈췄다. 대신 그 시절의 기억과 꽃, 주민휴식공간을 갖춘 공원으로 변신해 관광객을 맞이한다.

▲자연경관

가장 유명한 곳은 '빠삐용 절벽'이다. 빠삐용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곳은 낙조 사진촬영 대회가 열릴 만큼 일몰 풍경이 장관이다. 주홍빛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 내는 황홀경은 연평도의 자랑이다. 연평면 마을 앞에 길게 놓인 연육교의 야경 또한 여행객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곳엔 독특한 이름의 바위가 있다. 바로 '아이스크림 바위'와 '병풍바위'다. 섬 동북쪽에 위치한 아이스크림바위는 추운 겨울, 눈과 바닷물이 얼어붙으면 마치 아이스크림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송곳과 같이 뾰족하게 생겨 '송곳 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위 뒤로는 연평도 주민이 십장생에 속하는 장수의 동물 형상이라 하여 신성시 하고 있는 거북 모양의 '거북 바위'도 있다.

서북쪽에 있는 병풍바위는 말 그대로 마치 병풍을 쳐놓은 것같이 보인다. 주변에 몽글몽글한 오석이 많아 '옹돌갱변' 이라고도 불린다.

▲조기어장의 역사

앞서 말했듯 연평도는 조기잡이로 유명한 곳이었다. 조선 16대 인조대왕 14년에 (1636년) 임경업 장군에 의해 연평도에서 조기를 처음 발견한 후 해방 전후부터 1968년 전까지 황금의 조기파시어장을 이루었다. 각 지역의 어선들이 연평도 앞바다를 메우던 시절, '연평도 등대'는 이들의 유일한 길잡이였다.

1960년 3월 첫 점등을 시작해 찬란한 황금어장을 굽어 비쳐왔으나 1974년 7월 국가안보의 목적으로 일시소등하게 됐고, 1987년 4월엔 결국 등대로서의 용도가 폐지됐다. 현재는 빛도 소리도 없이 침묵으로 흥청거리던 지난 과거를 기억하며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등대에서 내려오면 우리나라 제1의 조기어장이었던 섬을 기리기 위해 조기배 모양으로 만든 '조기섬 동상'을 볼 수 있다. 그 뒤편으로는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관광전망대'(조기역사관)를 볼 수 있다.

1층은 조기역사관으로 꾸며져 조기어장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고, 전망대인 2층에선 북한의 전경을 관람할 수 있다. 북서쪽으로 보이는 병풍바위를 비롯, 옹돌갱변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북녘하늘로 지는 석양이 매우 아름답다.

조기역사관 앞뜰에는 두개의 돌비가 있다. 하나는 섬의 내력이 적혀 있고 또 하나엔 연평도 고유의 민속소리인 '니나나나'와 조기를 퍼 실을 때 부르는 '배치기소리'가 조각돼 있다.

▲해수욕장

걸어서 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연평도는 특히 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구룻나루(구리동)해수욕장'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길이 1km, 폭 200m의 자연해변은 양끝 쪽 산등성이에 숲이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하며 모래가 아주 부드럽다. 해변가에 나란히 펼쳐져 있는 기암괴석, 흰자갈, 모래도 독특한 느낌을 주며 여행객들의 시선을 이끈다.

연평도 또 하나의 해수욕장 '새마을해수욕장'은 해안이 조약돌로 이뤄져 1.5km나 계속된다. 마을 앞 쪽에 위치해 있고, 간조시 조개·낙지·게 등을 잡을 수 있는 갯벌이 형성돼 초등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화축제

연평도에서는 매년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조선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하고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연평도에 들러 가시나무로 조기를 잡은 것이 유래가 됐다. 주민들은 조기 잡는 법을 전수해 준 장군의 지혜를 숭모하고 고마운 뜻을 기리기 위해 '충민사'를 지어 매해 봄, 풍어와 어선의 안전을 기원했다.

바로 이 기원제가 발전해 축제가 된 '풍어제'는 연평도에서 많이 잡히는 고기와 해산물 13종류의 깃발을 제작해 선착장에서 마을 입구까지 게양하면서 시작된다. 이어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충민사당에서 오색만기를 내세우며 당굿, 배굿 등의 제사를 지내고, 대동제(민속물바구니 두들기기, 모형 띠배 띄우기)로 진행된다.

이 밖에도 북한땅이 바로 보이는 연평도엔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세운 '망향비'가 있다. 연평도 동북쪽 언덕에 있는 망향공원에선 기상이 좋은 가을날 북한 해주의 시멘트공장 연기까지도 보인다. 이 때문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분단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 매년 봄 연평도 선착장은 섬에서 많이 잡히는 해산물 13종류의 깃발이 나부낀다. 이 깃발들을 내세운 주민들은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충민사당으로 행진하며 풍어와 어선의 안전을 기원한다.


특산물

연평도의 포도는 육지에서 재배되는 포도와 같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거나 인위적으로 생육을 촉진시켜 일찍 따지 않는다. 포도나무를 해풍에 노출시켜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육시키기 때문에 뜨거운 여름에 생산되지 않고 늦은 가을철에 수확, 당도가 높고 향기가 진하며 맛이 좋다.

씨알이 굵고 맛이 있기로 유명한 꽃게는 연평도 앞 바다에서 잡은 것이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고, 자연산 굴도 품질이 우수하기로 정평 나 있다. 김 또한 맑고 깨끗한 바다 덕분에 단백질이 많고 카로틴, 비타민A의 모체와 비타민B 복합체, 비타민C와 칼슘 등 무기질이 많이 함유돼 있다. 피로회복과 숙취제거 식품으로 애용되는 바지락도 많이 잡힌다.

/심영주기자 yjshim@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