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팜플로나~에스테야
   
▲ 순례길 첫째 구간인'페르돈'(Perdon·용서) 고개. 넓은 밀밭을 좌우로 가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갯길 여정에서 중세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만났다. 페르돈 고개 내리막길은 가파르고 돌길이다.


스페인의 팜플로나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 성당으로 향하는 800㎞의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1천1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뜻으로 세계 3대 트레일로 꼽히며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루가의료재단 나은병원 하헌영(50) 원장이 최근 안식년 휴가를 내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찾았다. 열흘간의 스페인 일주와 26일 여정의 산티아고 도보여행을 통해 하 원장은 "순례길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순례길을 다녀온 뒤 하 원장은 매주 시간을 내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등 국내 각지의 도보 여행지를 걷고있다. 인천일보는 모두 4차례에 결쳐 까미노 데 산티아고 도보여행기를 연재한다.



 

   
 

출발점은 피레네 산맥 해발 981m에 위치한 론세스바예스(Rocesvalles)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까미노(Camino)는 우리말로 '길'을 뜻한다. 산티아고(Santiago)는 예수의 열두제자 중 야고보(야곱)를 말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야고보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좋겠다.
야고보를 만나러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가는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을 비롯해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시작하는 포르투갈 길(Camino portugues), 스페인 남부 세비아에서 시작하는 은(銀)의 길(Via de la plata), 스페인 북부에서 시작하는 북부 길(Camino del Norte),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는 파리 길(Chemin de Paris) 등 무려 열두가지에 달한다. 그 많은 방법 속에 나는 프랑스 길을 택했다.
프랑스 길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순례길 첫날부터 해발 1천500m의 피레네 산맥을 건너는 고난의 행군이 부담된다면 나와 같은 방법으로 론세스바예스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프랑스 길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800㎞에 달하는 길로,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가운데 4개(나바라, 라리오하, 가스띠야 이 레노, 갈라시아)를 지난다.
1편에서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바스크지방을 중심으로 한 팜플로나~론세스바예스~라르소나~수르메노르~푸엔타 라 레이나~에스테야 순례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 순례길에 오른 하헌영 씨.



● 나도 순례자
론세스바예스 사무실에서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받는 순간 '나도 이제 순례자의 한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니 숙연해진다.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의사이자 한 가장이 되고자 선택한 다부진 나의 다짐은 고귀한 순례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루가의료재단 나은병원의 나은 미래를 위한 해답 그리고 우리 가족, 지인들의 행복을 기원하겠다는 생각은 경건한 마음가짐 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론세스바예스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지역이다.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역사의 흔적이 예사롭지 않다.
야고보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많다는데 그 중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고집하는 건 다 이유가 있나보다. 거칠고 험난한 역사 흔적 속에서도 오솔길의 잔잔한 매력이 고집스럽다.
이 길은 숲이나 목장 사이를 지나는 내리막길과 평지가 공존하는 곳이다.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마실 물을 구할 수 있는 샘도 여러 곳에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목장을 통과할 때 가축들의 출입문을 지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들어가고 나올 때는 반드시 문을 닫아주는 예의는 잊지 말아야 한다. 에로고개를 지나고 다리의 마을인 수비리까지 내리막길이다. 이 길에는 작은 돌들이 많아서 비올 때 주의해야 한다.
프랑스 국경에서 가까운 팜플로나 북동쪽. 피레네 산맥 해발 981m 지점인 론세스바예스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점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지역인 이곳은 중세시대에는 항상 긴장감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역사적으로 큰 사건으로 남는 론세스바예스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샤를마뉴 대제의 후위 호위대가 바스크족에게 대학살 당했던 곳으로 '롤랑의 노래'와 '론세스바예스 서사시'로 역사에 남겨져 있다.

 

   
 



● 까미노 데 산티아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성지 순례는 이슬람교도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950년에 시작됐다.
1072년에는 가스띠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에게 부과하던 통행세를 폐지했고, 1189년에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산티아고를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하자, 15세기까지 순례길은 활기를 띠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일본인 남성 무덤의 십자가가 보인다. 이 사람은 순례자의 길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심장마비로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이곳 순례자의 길에서 죽게 되면 죽은 그 장소에 묻힐 수 있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순례길의 매력 아니던가. 브라질에서 온 친구, 스페인에서 온 일가족들, 일본인 친구, 독일에서 온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의 친구. 나라와 언어는 다르지만 모두 한마음 순례의 길을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이들과 나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 페르돈 고개
넓은 밀밭을 좌우로 가르며 끊임없이 이어진 고갯길이 나타난다. 한국인 순례자들이 일명 깔딱고개라고 하는 그 유명한 페르돈 고개다.
아침햇살의 고마움을 만끽하며 멀리 보이는 피레네를 뒤로 하고 아름다운 스페인 북부의 마을들을 바라보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확 트인 밀밭 사이 길을 오르던 중에 순례자의 무덤이 보인다. 십자가가 꽂혀 있고 십자가 양쪽에 걸려 있는 신발과 앞에 놓인 꽃이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는 것 같다.
진흙길, 물이 흐르는 자갈길을 반복하여 올라가던 중에 아름다운 조그만 성당이 보인다. 성당 앞에는 순례자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수돗물이 있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 '좋은 여행길이 되길!', '당신의 앞날에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스페인)=글·사진 하헌영(나은병원 원장)


 

   
 




순례자의 숙소 '알베르게'

알베르게는 출발지에서 발급받는 순례자 증명서인 끄레덴시알을 지참한 순례자들만을 위한 숙소다. 알베르게는 공립부터 사설, 종교단체, 산티아고 협회 등에서 운영한다. 개방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나 보통 오후 1~4시에 문을 열고 밤 10~11시쯤 문을 닫는다. 다음날 아침 8시에는 자리를 비워야 한다. 숙박료는 3유로에서 10유로 사이고 기부제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