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이 죽는다는 말이 들리는데 인정이 함께 죽을까봐 걱정이다. 시장기가 반찬이라는 말이 있다면 인정이 밥맛이라는 말도 성립할 것이다. 엄마의 손맛이나 가족끼리 오순도순 밥상에 머리를 맞대는 것 이상의 행복이 있을까? 밥상머리야말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그런 밥상은 시장에서 쌀을 사고 찬거리를 마련하면서 시작된다. 요즘 자동차를 몰고 이른바 대형마트에 가면 할인에 카드적립 세금감면 서비스에 보너스상품 신선도 시간절약 등등 편리하고 친절할 뿐 아니라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시장은 과연 불편한가? 동네의 시장에는 우선 단골이 있다. 마늘을 까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때론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 할머니는 똘똘이 엄마가 이때쯤이면 시금치를 얼마큼 사갈지 알고 있다. "오늘은 갈치가 물이 안 좋아요. 고등어가 어때요. 한 마리 더 드릴게요. 내일은 백령도에서 꽃게가 들어올 텐데." 돌아오는 길에 수선집에 맡겨둔 바지도 찾아오다 보면 신선도, 할인, 서비스에 친절까지 재래시장이 얼마나 편리한 곳인지 알 수 있다.

마트가 신선하다고 하지만 그 유통과정을 찬찬이 살펴보시라! 싸다고 하지만 자동차를 몰고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현란한 조명에 속아 세일하는 브랜드를 골라 카트에 듬뿍 싣고 카드를 죽 긋다가 혹 어느 날 고칼로리 식품으로 늘어난 뱃살에 놀란 일은 없는지? 편리와 절약이라는 이름의 창고에는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 함정도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카드가 처음 나오고 그것이 특권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다. 그 카드를 들고 발명국인 미국에 갔을 때 '이런 촌놈을 보았나?' 그런 표정으로 친구는 현금을 손에 쥐어 주며 돈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었다. 일본도 현금을 쪼개 절약하는 풍토는 마찬가지다. 월급이 은행으로 들어와 카드로 결제되고 구석구석 인터넷이 깔려 스마트폰으로 온 국민이 '걸어다니는 금융가'가 된 것은 선진국을 넘어 첨단국가의 국민이 된 들뜬 기분이겠지만 아버지를 졸라 카드로 자동차를 사고 국가는 카드깡을 해서 적자 경영을 하고 인플레를 하면 빚이야 몇 년 뒤에 팍 쫄아들테니 걱정이 없다는 '많이 배운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면 간이 쪼그라든다. 지방은 한 술 더 떠 100층짜리 건물조감도만 걸어 놓으면 시장-군수자리는 따논 당상인 세태다.

비닐봉지를 들고 먼길을 돌아 시장에 가는 프랑스의 날씬한 아줌마를 TV에서 보았다. 도시경제는 시민이 서로 도와 만드는 것이다. 아줌마들이여! 비닐봉지를 들고 재래시장에 가서 파 한 단을 사고 대한민국 아줌마의 매운맛을 싱싱한 파김치로 보여주는 것은 어떤가? /양효성(자유기고가)




양효성씨=서울에서 부산까지 조선의 옛길인 죽령대로를 두 달간 도보로 여행한 기록인 '나의 옛길 탐사기1·2'권을 출간했다. 기원전 30년께 서한시대 말 환관 출신의 사유(史游)가 편찬한 한자교본 '사유 급취장'을 번역했으며, 이 책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