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제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기 전만 해도 고교 국어교과서는 독본 한 권뿐이었다. 그러던 것을 2002년 지금처럼 전공(專攻) 나눠먹기 식으로 독본, 화법, 독서, 작문, 문법, 문학, 매체언어 등 6개 과목으로 잘게 쪼갰다.
교과서 자체가 늘어난 만큼 참고서도 많아졌으니 부모들 허리가 더 휘청거렸을 것은 불문가지다. 그렇다고 새로운 경지의 지식을 배우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문 전공자와 일부 시인, 소설가, 문필가만 희색만면이었다.
특히 모 대 출신 시인, 소설가, 문필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그 중의 한 시인이 최근 수능 언어능력에 출제된 자신의 시 문제의 답을 자신도 모르겠노라며 시 교육이 '가르침'이 아니라 '가래침'이라 했다고 한다.
시를 곧잘 쓴다는 평판을 들어왔던 그가 그런 말을 용감하게 내뱉은 까닭이 무엇인지는 못내 궁금하다. 아무리 '내 멋대로 해' 세상이지만 전국의 국어교사들이 일종의 모욕감을 느꼈을 것은 뻔 한 일이라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시는 누구나 같은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수학처럼 명증할 수 없다. 정답이 없는 것이다. 시의 진가는 그런 애매 모호성에 있다고 영국의 비평가 윌리엄 앰프슨이 단단히 타일렀던 것을 잊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가르치고 시험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는 시 교육의 본질적 아이러니와 한계를 그만한 이력의 시인이라면 모를 리 없을 터이다. 만일 인지·인식도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라면 더 큰 문제다. 이런저런 지지를 통해 읽어왔던 그의 시가 마치 '바람에 날리는 쌀겨와 같다'고 여겨졌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