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각 도시는 전국체전 유치에 열을 올렸다. 인천은 서울, 광주, 부산, 대전, 대구, 전주에 이어 1964년에야 대회를 열었다. 학수고대했던 첫 체전이었으나 대회 기간 내내 큰비가 내려 진행에 애로가 많았다.
시는 개막 직전까지 인천종합경기장 확장 및 보수공사를 마쳤다. 도시 미관 개선사업에도 나서 종합운동장에서 빤히 보이는 전도관 일대의 초가집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고, 시내 각지의 아스팔트도 새로 깔았다. 당시 지방지들은 "체전 개최로 인천의 발전이 10년은 앞당겨졌다"고 보도했다. 제45회 이후 인천은 59회(1978년), 64회(1983년), 80회(1999년)에 이어 2012년 통산 제90회 대회의 개최 도시로 이미 확정된 바 있다.
그동안 체전 개최가 지역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의 규모가 커져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 유치에 성공하자 상대적으로 시들해졌고, 체전의 지역발전론도 지난 시대의 구호가 됐다.
그런 점에서 지난 80일간 신도시에서 펼쳐졌던 '세계도시축전'은 역대에 가장 규모가 컸던 축제로 과거의 체전과는 달리 다양한 측면에서 지역사회 발전의 모티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국내외에 주목을 받을 만했다.
물론 명암(明暗)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 총체적인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인천의 숨김없는 실력(實力)'이었다 점을 시민, 사회 모두가 바로 인식해야 할 것 같다. 잔치는 끝났다. 지금은 그 노고를 서로 격려해 줄 때다. 그것이 정녕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는 시간이라는 위대한 스승이 천천히 말해 주리라 믿는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