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20여 년 전이었다. 조선조 마지막 어진화가인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의 화업을 기리는 기념관이 중구 송학동 고택에 세워졌다. 인천 출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최초의 기념관이란 점에서 본보는 크게 보도했었다.

그러나 그 몇 년 뒤 이당이 작고하자 기념관은 하루 아침에 폐쇄되고 말았다. 미국에 살던 후손이 그 땅을 타인에게 매각하고 홀연히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역사회가 그를 지켜내려고 노력해 본 일은 없었다.

당시 후소회 김기창 회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반드시 기념관을 재건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설상가상, 이당은 친일 전력으로 인해 예술계 '숙청 대상 제1호'로 낙인 찍힌 신세가 되었다.

이당이 그렸던 논개나 춘향의 소위 '표준 영정'들이 세상 밖으로 동갱이 쳐지는 일이 벌어졌다. 친일 잔재 청산과 작가의 예술성을 분별할 수 있는 문화사적 안목을 갖기에는 아직 한국사회의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이당의 제자인 모 화백이 그림과 화폐, 독도, 수석 관련 자료 등을 기증하자 시가 호응해 '미술관'을 지어주기로 해 설왕설래다. 기증품들이 인천과 무슨 아랑곳이냐는 시각이 주류다.

그 성격도 문제다. 명칭은 '미술관'이지만, 자료관이나 개인 기념관적 성격이 짙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역성과 정체성이 요구되는 데 이 점을 향후 시민과 문화예술계가 어떻게 받아드릴 지도 미지수다. 스승과 제자가 시공을 건너 우리에게 문제를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머리를 맞대고 숙의할 사안이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