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개화기 신문물의 도입이 대개 그렇듯 자전거도 제물포를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미국 공사 알렌의 견문기에는 공사관 무관을 역임했던 해군장교 포크가 1884년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전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자전거 도입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이다. 알렌은 "포크가 딱딱한 바퀴에 안장이 높은 구식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릴 때 자기는 말을 탔는데 이를 본 한국인들은 벌린 입을 닫을 줄 몰랐다"고 기록했다.

윤치호 도입설도 있으나 이규태 선생은 "윤치호가 외국에서 귀국한 것이 1883년 푸트 미국 공사의 통역으로 들어온 것과 189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두 번인데 어디에도 자전거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밝혔다.

개항 직후 제물포에 자전거가 몇 대나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1903년 조정에서 관리들을 위해 100대를 도입하였다(이규태 선생)"는 것은 큰 인식의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던 듯싶다.

자전거에 대중이 열광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 후였다. 일본인이 판을 치던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 등에서 그들을 제치고 연전연승 우승을 거머쥐었던 엄복동이 망국의 한을 시원스레 씻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자전거가 달리 인식되고 있다. 이동과 운반의 수단에서부터 벗어나 새로 탄생한 것이다.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탈 것'이라는 찬사와 함께 자유와 독립 의지까지 갖게 해 주는 명상적 도구라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다소 문제가 있으나 '환경과 인간과 공동체'를 동시에 살리는 '친자전거 정책'은 계속 돼야 한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