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모 글
학생운동 시절이나 노동운동 시절 진보적인 운동 단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제도권 야당 세력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지 못하고 타협하는 야당의 모습에 대해서 가혹한 비판을 퍼붓기도 하였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민주정부 수립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양 김 분열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양 김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동교동계 비서로 들어 오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도 거절하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인천으로 왔다.
그런 내가 이제 제도권 정치인이 되어 국회의원이 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치인이 되어서 바라본 김대중의 모습은 여러 가지 보이지 않던 점을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다. 양 김의 불철저함과 분열의 모습을 비판했던 우리의 자화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유신독재 하에서 야당 정치를 한다는 것이 마치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미 민주화가 진행된 시점에서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하지 않고 있다. 대권이 아니라 더 작은 이해 관계 하나로 분열하고 국회의원 공천 때문에 탈당하고 또 신당을 만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 어려운 유신 독재, 5·6공 치하에서 정치자금을 만들고 조직을 만들고 민주개혁의 불꽃을 꺼드리지 않고 지켜온 김대중.
1994년 핵 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북에 보내고 이번 핵 위기 때는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방북 제안을 하여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고비고비 민족의 위기 앞에 자기 역할을 해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야합과 이후 행동을 볼 때 과연 저런 사람과 단일화를 했어야 했나 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번도 후보 단일화 실패를 공개 반성하지 않았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사과 반성을 하였다.
출신지역 때문에 차별 받고, 대학 못 나왔다고 차별 받고, 빨갱이로 몰리고 수차례 살해 시도 속에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 마침내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책 속에만 있는 장식적 헌법 조항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헌법 조항으로 만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5년동안 한 일을 보면 그가 단순히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싸웠던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면 꼭 해야 할 비전과 염원이 있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IMF 외환 위기 극복, 재벌 개혁, 정보화 토대 구축, 인권위원회 설치, 남북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 등. 그의 유산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공기와 물과 같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자산으로 승계되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조차도 19일 사설에서 "김대중이 태어났을 때 한국은 일제 강점기였다. 그가 성인이 됐을 때는 군부 독재 체제였다. 지금 한국은 13번째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의 본 고장이다. 한국은 이 같은 주목할만한 업적을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은 아니다" 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했다.
그 김대중의 유산이 파괴되고 훼손되어 가고 있다. 그 와중에서 노무현,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이 연이어 서거하셨다. 그래서 그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의 사명과 책임감이 한층 더 무겁게 다가온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만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입니다"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두 전직 대통령이 우리 국민에게 남기신 말은 우리 가슴 속에 새겨지고 있다.

/송영길국회의원·인천 계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