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의 지구촌
쿠웨이트에서 있었던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본부 개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것은 3월8일 저녁 시간이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프랑스에서 요양 중인 어머님(李聖子 화백)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전화를 받고 걱정이 되었으나 쿠웨이트행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인천에서도 많은 참석자들이 있었고 필자도 개관 행사의 하나로 계획된 스포츠 콩그레스에서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두바이에 도착하여 쿠웨이트행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어머님이 별세하셨다는 급보(急報)를 받았다. 작년부터 노환으로 자택과 병원과 요양소를 오가면서 원기를 회복 중이셨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뜨실 줄은 예상 밖이었다. 쿠웨이트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님의 별장과 화실이 있는 니스행 비행기로 급히 달려갔으나 임종을 보지 못한 불효 자식이 되고 말았다.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간 어머님은 '여자로서 또한 예술가로서 낯선 이국땅에서 불모지를 일구듯 치열함과 토속적이지 않으면서도 동양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프랑스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이지은 명지대 교수) 어머님은 또한 프랑스에서 미술을 배우고 작품 활동을 계속한 최초의 한국 화가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분이었다. '정녕 국제적이었던 이성자 화백이야말로 동양을 알되 서양에 빠지지 않았고 서양을 배우되 동양을 잊지 않은 정체성의 화가였다.'(서울대 정영목 교수)

애초에 쿠웨이트에서 OCA 행사가 끝나면 3월13일에 뵈러 가기로 계획하고 있었으나 어머님은 닷새를 버티지 못하시고 영면(永眠)하시고 말았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