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의 지구촌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던 70년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대서양을 오가던 호화 유람선 '라·프랑스'호가 마지막 항해를 기념하면서 외국특파원을 초청한 일이 있었다. 유람선의 규모와 시설도 대단했지만 선실에 피카소와 샤갈의 판화들이 걸려 있고 최고급 식기로 서비스하는 식사도 파리의 특급 레스토랑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승객들 역시 프랑스와 미국의 여유있고 멋을 아는 상류층들이 대부분이었다.

'라·프랑스호'나 '퀸엘리자베스'호 같은 초대형 크루즈들이 은퇴한 후부터 크루즈 산업에도 변화가 일었다. 가격도 내려가고 서비스 역시 현실화됨으로써 크루즈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주 6백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항에 들어온 '아자마라 퀘스트'호의 승객들이 인천을 외면하고 모두 서울 관광에 나섰다고 지역언론에서는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인천항의 현주소를 알고 부두에 인접한 구도심의 폐허 일본전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승객들 대부분이 서울로 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천 내항은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인천이 한국 3대 도시로 부상하여 세계적인 명품도시를 지향하는 오늘날에도 원료 화물을 취급하는 '더러운 항구'로 머물고 있다. 오죽했으면 인천 상륙의 소감을 묻는 방송기자에게 한 승객은 '더럽다'는 예의없이 들리는 극단적 표현을 썼을까.

그나마 일부 승객들이 인천을 보겠다고 1부두에서 게이트까지 나오는 것을 인천일보는 '이들이 1백 미터 걸어오는 동안 안내인도 없었고 거대한 화물을 싣고 위압적으로 달리는 트레일러를 피해야했으며 초라하고 후줄근한 게이트도 좋은 인상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자학적으로 보도했다. 그날은 인천에 사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지는 힘든 하루였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